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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다큐 줌인] 마포 양원주부학교를 가다

[포토다큐 줌인] 마포 양원주부학교를 가다

입력 2012-11-02 00:00
업데이트 2012-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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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연필 쥔 ‘늦깎이 학생들’

문맹률이 세계 최저인 우리나라에 여전히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어린 시절 먹고살기 힘들어서, 또는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배움의 때를 놓친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들이다. 자식들에게 말도 못하고 평생 못 배운 한을 품고 살아온 어르신들. 이들을 위한 ‘늦깎이 배움터’가 있다. 서울 마포구 양원주부학교. 늦은 나이에도 배움을 삶의 기쁨과 보람으로 여기며 행복한 제2의 인생을 꿈꾸는 공부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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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재미있어요” 늦깎이 초등학생인 할머니들이 글자 하나라도 놓칠세라 또박또박 큰 소리로 국어책을 따라 읽고 있다.
“공부가 재미있어요”
늦깎이 초등학생인 할머니들이 글자 하나라도 놓칠세라 또박또박 큰 소리로 국어책을 따라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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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굣길 가벼운 발걸음 책가방을 메고 문구점 앞을 지나서 학교를 향하는 할머니들의 발걸음이 활기차다.
등굣길 가벼운 발걸음
책가방을 메고 문구점 앞을 지나서 학교를 향하는 할머니들의 발걸음이 활기차다.


●배움의 때 놓친 어르신들 만학 열기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10월 하순. 구부정한 허리에 ‘책’이 들어 있는 배낭을 메고 학교로 들어가는 할머니들의 발걸음이 활기차다. 대부분 50~80대 늦깎이 초등학생들이다.

첫 시간 수업은 국어. “머~리! 허~리! 다~리!” 신체 부위의 명칭을 율동과 함께 익히는 중이다. 글자 하나라도 놓칠세라 또박또박 큰 소리로 따라 읽는 할머니들. 학교를 다니는 각자의 사연은 다르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만큼은 하나같이 뜨겁다. 어려운 글자가 나타나면 멀쩡한 돋보기를 타박하기도 하고 뒷사람 공책을 슬쩍 엿보기도 한다. 그래도 한 글자 한 글자 익혀나가는 재미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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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눌러 쓴 글씨 한 자 한 자마다 정성이 담겨 있다.
꼭꼭 눌러 쓴 글씨 한 자 한 자마다 정성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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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쓰기에서 100점을 받고 환하게 웃는 할머니.
받아쓰기에서 100점을 받고 환하게 웃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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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찾아 온 공부도우미와 함께 복습과 예습을 하고 있다.
집으로 찾아 온 공부도우미와 함께 복습과 예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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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앞두고 ‘열공’ 중인 늦깎이 수험생.
수능을 앞두고 ‘열공’ 중인 늦깎이 수험생.


●글자 하나하나 큰 소리로 따라 읽어

교사 천정희(32)씨는 “숙제는 한분도 빠짐없이 해 오시며 종을 쳐도 계속 질문을 할 만큼 열띤 수업”이라고 말했다. “받아쓰기할 때 받침이 제일 어려워요.” 팔순을 코앞에 둔 장기분(79) 할머니가 학교를 찾은 이유는 배우지 못해 겪었던 ‘한’과 ‘서러움’ 때문이다. “책보자기를 메고 학교 다니는 친구들을 담장 밑에 숨어 지켜보며 눈물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어릴 적을 회상한다. 아플 때 병원에 가는 것도 힘들었다. “접수할 때 이름을 못 써서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는 게 얼마나 창피했던지..” 이제는 신문도 어느 정도 떠듬떠듬 읽고 상점의 간판들을 웬만큼 읽으며 스스로 만족해하고 있다.

이필순(66) 할머니는 요즘 손자들과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살고 있다. “서너 살 된 손자들이 동화책을 읽어 달라고 할 때면 얼굴 보기가 민망했었다.”며 “이젠 안심하고 손자들 재롱을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해마다 수능 때면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만학도들의 도전기는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 학교를 졸업한 신성례(69) 할머니는 올해 학업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수능에 도전한다. “다니다 보니까 너무 재미있고 내친김에 대학 진학까지 생각하게 됐어요.” 사회복지학과 지망생인 신 할머니는 ‘소외된 사람을 위해 여생을 보내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열공’ 중이다.

●69세 할머니 “올해 수능 도전해요”

1982년 주부학생 12명으로 출발한 양원주부학교. 누구나 연령에 제한 없이 다닐 수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주부들을 위한 기초반부터 중·고등부까지 있으며 1년 과정으로 매년 3월, 9월 선착순 모집을 한다. 지난 30년간 배움에 목말랐던 수많은 주부들이 밝고 활기찬 새 삶을 찾았다. 이선재(77) 교장은 “어려운 시대에 교육의 기회를 양보했던 분들이므로 마땅히 사회가 보상해 주어야 한다.”며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미래를 향한 열정으로 연필을 쥔 늦깎이 학생들. 그들은 뒤늦게 잡은 배움의 기회를 값진 꿈과 행복으로 일궈가고 있었다.

글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2012-11-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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