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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100세를 위하여] <1부>활기찬 노년을 꿈꾸다①

[행복한 100세를 위하여] <1부>활기찬 노년을 꿈꾸다①

입력 2013-05-06 00:00
업데이트 2013-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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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 대신 주식 투자하는 노인, 바지 대신 레깅스를 입는 노인, 손자와 최신 스마트폰 앱 정보를 주고받는 노인…. ‘신(新)노인’의 시대가 오고 있다. 720만명에 이르는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고령층 편입이 한창이다. 2010~2012년 베이비부머 연구를 진행한 한경혜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과 소비패턴을 갖춘 베이비부머의 노후는 이전 세대와 다를 것”이라고 단언했다. 과연 그럴까. 노인의 겉모습은 새로운데, 처지는 예전과 같다는 냉혹한 평가가 더 지배적이다. 재정적·심리적 노후준비 수준이 앞서 은퇴한 세대보다 나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노인은 고령 사회의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 것인가. 이들의 좌절과 함께 우리 사회도 성장 잠재력과 활력을 잃고 말 것인가. 활기찬 나이듦에 대한 진단과 조명을 통해 ‘행복 100세’의 길을 모색해 본다.


올해 고희(70)를 맞은 지연영 할머니는 경기 일산 호수실버밴드의 기타리스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악단 창단 멤버였던 그는 계속 공연을 할 수 있어 들뜬다고 했다. 올해 예순인 정종댁씨는 숲생태 해설자다. 숲 속 동물의 먹이를 설명하면 초롱초롱해지는 유치원생들의 눈망울이 떠올라 늘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길을 재촉한다.

자동차정비공장에서 25년 일하고 10년을 사외이사로 더 근무한 류경열(58)씨는 5년쯤 뒤 일을 쉬는 게 삶의 계획이다. 정비 일을 하면서 부업으로 보험회사 대리점을 하고, 취미로 농사를 짓고, 최근에는 대학원 공부까지 했다. 노년을 좀 더 여유 있게 지내고 싶은 바람에서다. 19년째 무역회사에 다니는 장지선(43·여)씨는 ‘할머니 화가’가 되는 게 노년의 꿈이다.

젊은 시절 각자의 인생이 있듯이 나이 들어서도 저마다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여기에는 1955~1963년생인 베이비부머(50~58세)가 큰 영향을 미쳤다. 700만명에 이르는 이 세대는 고도성장기에 젊은 시절을 보냈다. 대선 때마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등 정치·사회·경제적인 면에서도 영향력을 과시해 왔다. 이들이 고령화 세대에 진입하면서 ‘행복 100세’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금융사들은 앞다퉈 은퇴설계 상품을 내놓고 있고, 국가와 사회도 노인 복지에 눈을 돌리고 있다.

박기출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은 “50대들의 은퇴 준비 점수가 100점 만점에 58.4점으로 낮은 편이지만 은퇴와 ‘나이 든다는 것’에 맞서는 의지 측면에서는 베이비부머 특유의 결기가 대단하다”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늙음을 피하려는 ‘안티 에이징’ 대신 나이 듦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액티브 에이징’을 추구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적극적이고 활기찬 노년’이란 뜻의 액티브 에이징은 유럽·미국 등지의 노인 정책을 대변하는 용어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제시한 개념이기도 하다. 노인이 건강하게 지역사회와 어울리며 사회·경제적 활동을 계속할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가장 높고 ▲남성의 실질 은퇴연령이 71.2세로 상대적으로 높으며 ▲일 안 하는 노인의 생계가 위험할 만큼 연금제도가 부실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노인복지 지출 비중이 2%도 채 안 되는 점 등 때문에 고령화 사회의 전망이 밝지 못했다. 박 소장은 “돈·건강·여가·네트워크(인간관계) 등을 갖춰야 행복한 노년이 가능한데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이런 준비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세대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베이비부머가 액티브 에이징 시대를 열 세대로 주목받는 이유는 고령화 사회에 대한 사회적 논의 분위기가 조성된 데다 60대 이상 세대의 ‘행복하지 못한 은퇴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경험 등 때문이라고 손성동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실장은 분석했다.

손 실장은 “그동안 노인들이 은퇴 준비를 제대로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기 때문”이라면서 “최근에는 은퇴 후 삶이 30년 이상으로 현업에서 일하는 기간 만큼이나 길다는 점을 은퇴자들도 서서히 절실하게 느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장수 리스크’ 완화에서도 드러난다. 예상 못한 은퇴기간 대비 예상 은퇴기간을 뜻하는 장수 리스크는 2005년 0.87에서 2010년 0.74로 떨어졌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은퇴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짐을 뜻한다. 손 실장은 “장수 리스크 못지않게 은퇴 후 건강한 기간과 병약한 기간 비교 결과도 개선됐다”면서 “2002년에는 두 기간이 비슷했으나 2007년에는 병약한 기간이 건강한 기간의 82% 정도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생계보다는 ‘일하는 즐거움’ 자체를 찾아 경제활동을 계속하려는 노인도 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55~79세 중 취업 희망자 비율은 지난해 59.0%로 전년보다 0.5% 포인트 늘었다. “생활비 마련을 위해서”라는 응답은 54.9%에서 54.5%로 0.5% 포인트 줄어든 반면, “일하는 즐거움 때문”이라는 응답은 35.5%에서 36.5%로 1.0% 포인트 증가했다. 한국노년학회 이사인 박영란 강남대 실버산업학부 교수는 “지역 내 봉사활동과 재능기부 등에 나서는 노인, 여행을 하거나 평생교육을 받으며 적극적인 취미 활동을 기획하는 노인들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는 고령화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이 부각됐지만 미국 시카고대는 최근 1972~2004년 2만 8000명의 행복지수 분석 결과를 토대로 노인을 가장 행복한 집단으로 꼽았다”고 소개했다. 이어 “개인과 사회가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노년기가 인생의 황금기가 되고 사회 활력도 크게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기호 우리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베이비부머들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끌었다는 신념이 강한 세대로 은퇴 후 단순히 여가생활로 시간을 보내기보다 적극적인 모습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용주 한국노인인력개발원장은 “지금까지 노인정책의 대부분이 소득보장과 장기요양보험에 집중되었다면, 이제 신세대 노인층의 경제활동과 사회참여를 함께 독려할 수 있는 진짜 노인 정책이 마련돼야 할 때”라고 말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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