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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 산책]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 ‘한산모시 짜기’ 장인을 만나다

[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 산책]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 ‘한산모시 짜기’ 장인을 만나다

입력 2014-06-16 00:00
업데이트 2014-06-16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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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세월 오간 베틀 위… 더위는 품위로 바뀌었네

장마를 앞두고 초여름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옛 어른들은 한여름에 무슨 옷을 지어 입고 어떻게 더위를 견뎠을까. ‘입고 있어야 오히려 시원하다’는 전통 옷감이 있었으니 ‘한산모시’가 바로 그것이다. 가볍고 우아하면서도 천의 짜임이 마치 잠자리 날개처럼 섬세하기가 으뜸이라 모시의 대명사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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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연옥씨가 한산모시전수관에서 모시 길쌈을 하고 있다. ‘한산모시 짜기’는 충남 서천군 한산면 일대에서 1500여년에 걸쳐 전승되고 있는 모시 짜는 장인 기술로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이다.
방연옥씨가 한산모시전수관에서 모시 길쌈을 하고 있다. ‘한산모시 짜기’는 충남 서천군 한산면 일대에서 1500여년에 걸쳐 전승되고 있는 모시 짜는 장인 기술로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이다.
한낮의 이글거리는 태양이 바람을 잠재우고 있던 지난 14일. 모시의 고장 충남 서천군 한산면은 곳곳이 모시밭이었다. 1m 이상 기다랗게 웃자란 모시가 바람에 가볍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한산면 지현리 한산모시관에서는 방연옥(69·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 한산모시 짜기 보유자)씨의 모시 길쌈이 한창이다. 갓 수확해 온 모시풀에서 뽑아 낸 굵은 실을 방씨는 일일이 입으로 쪼개 가늘게 만들고 있었다. 그는 “입안이 헐고 입술이 찢어지는 일도 다반사”라며 침을 바른 뒤 무릎에 문질러 길게 잇고 손짐작으로 21.6m의 길이로 실타래에 감았다. “쩔거덕 쩔거덕.” 수백 개 날줄 사이를 씨줄을 얹은 북이 바쁘게 움직인다. 참빗처럼 촘촘한 ‘바디’(베틀의 일부)에 모시실을 끼워 가며 같은 동작을 셀 수 없이 반복하는 방씨의 손놀림이 현란하다. 가느다란 모시실이 나무 베틀 위에서 고운 옷감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모시 고장에서 태어나 60여년 동안 모시를 삼아 온 방씨는 “모시는 품질과 들인 공력으로 볼 때 서양에서 들어온 천과는 비교가 안 된다”며 “모시가 비싼 듯해도 대물림하며 입는 명품”이라며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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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째 가업을 이어온 모시 베틀 장인 윤주열씨가 전통 방식으로 베틀을 만들고 있다.
3대째 가업을 이어온 모시 베틀 장인 윤주열씨가 전통 방식으로 베틀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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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삼기:째기가 끝난 섬유를 ‘쩐지’라는 버팀목에 걸어 놓고 한 올씩 무릎 위에 맞이은 뒤 비벼 연결시켜 광주리에 쌓아 놓는 과정.
모시삼기:째기가 끝난 섬유를 ‘쩐지’라는 버팀목에 걸어 놓고 한 올씩 무릎 위에 맞이은 뒤 비벼 연결시켜 광주리에 쌓아 놓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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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째기:태모시를 쪼개서 입으로 모시 섬유의 굵기를 일정하게 하는 과정.
모시째기:태모시를 쪼개서 입으로 모시 섬유의 굵기를 일정하게 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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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매기:날실을 팽팽하게 한 뒤 콩가루와 소금을 물에 풀어 만든 콩짓가루를 배솔에 묻혀 이음매를 매끄럽게 하여 모시짜기에 알맞게 완성한다.
모시매기:날실을 팽팽하게 한 뒤 콩가루와 소금을 물에 풀어 만든 콩짓가루를 배솔에 묻혀 이음매를 매끄럽게 하여 모시짜기에 알맞게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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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을 마친 모시옷감을 볕이 좋은 장소에 말리고 있는 모습.
염색을 마친 모시옷감을 볕이 좋은 장소에 말리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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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모시옷은 전통 복식 이외에도 현대 감각에 맞는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오늘날 모시옷은 전통 복식 이외에도 현대 감각에 맞는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한산모시 짜기’는 한산면 일대에서 1500여년에 걸쳐 전승되고 있는 모시 짜는 장인 기술을 말한다. 오늘날에도 모시를 째고 삼고 짜는 모든 직조 과정은 옛날 그대로다. 2011년에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에 등재된 이유다. 한산모시 짜기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현재 100여명의 아낙들이 가내수공업으로 생산한 모시를 알음알음으로 판매하거나 한산모시 장에 내다 팔며 모시 고장의 명맥을 잇고 있다. 모시는 섬세한 특성 때문에 모시 베틀도 정밀하게 만들어야 한다. 3대째 가업을 이어온 모시 베틀 장인 윤주열씨는 “나무가 뒤틀어지거나 한 치의 틈도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서천군에서는 윤씨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토록 준비 중이다. 서천군은 해마다 한산모시의 역사와 우수성을 알리며 진가를 체험할 수 있는 ‘한산모시제’를 열고 있는데 올해는 오는 21일부터 24일까지 한산모시관 일원에서 진행한다.

역사적으로 한산모시는 한국의 미를 상징하는 여름 전통 옷감으로 가치가 높다. 일찍이 삼국사기에 따르면 한산모시는 신라시대에 모시를 짜는 관청을 따로 두고 당나라에 공물로 보낼 정도로 중요한 직물이었다. 정약용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서는 주발 하나에 한 필이 들어갈 만큼 섬세한 옷감인 ‘발내포’(鉢內布)라 하여 가벼운 질감을 예찬했다. 오늘날까지 모시는 소재로도, 제작 방식으로도 특별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더위를 이기기 위해 자연 속에서 터득한 지혜를 실천했다. 천연섬유인 모시로 여름옷을 직접 지어 입으며 자연의 순리를 함께하는 길을 걸었다. “세모시 옥색 치마 금박 물린 저~댕기가”라고 하는 가곡 ‘그네’의 가사처럼 한 폭의 풍속도를 그려 내던 이 땅의 여름은 모시옷과 더불어 왔다. 정갈하게 풀을 먹인 모시 적삼과 함께 더위를 이겨 내며 품위와 멋을 지녔던 것이다. 아른아른 속살을 비쳐 내며 와삭와삭 풀 바람을 일으키는 그 싱그러운 청량감이 삼복염천(三伏炎天)에서도 땀을 씻을 만큼 시원하다.

‘한산모시 짜기’는 우리 민족 의류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이다. 이 여름에 편리함과 속도를 좇는 우리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전해 주고 있다.

글·사진 서천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2014-06-16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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