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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50년을 열자]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 “韓·日은 美·中 사이 캐스팅 보트 쥐고 있어…해법 모색해야 할 때”

[새로운 50년을 열자]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 “韓·日은 美·中 사이 캐스팅 보트 쥐고 있어…해법 모색해야 할 때”

이석우 기자
입력 2015-06-21 23:16
업데이트 2015-06-22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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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한국이 본 일본, 일본이 본 한국 (1회) 원로에게 2065 한·일 미래를 묻다





오코노기 마사오 일본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한·일 관계는 타협은 있었지만 완전한 화해에는 이르지 못했다”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새로운 시대 변화에 맞는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한반도 및 동북아 문제 연구의 태두인 오코노기 명예교수를 한·일 수교 50주년을 앞둔 21일 도쿄 게이오대 미타캠퍼스에서 만났다. 그에게서 한·일 관계 개선의 해법과 전망, 중국의 부상 등 국제 환경 변화에 따른 두 나라의 역할과 미래 등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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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 지한파인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가 21일 도쿄에서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과거사는 한·일 관계의 한 부분이며, 새 시대에 맞게 양국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 지한파인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가 21일 도쿄에서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과거사는 한·일 관계의 한 부분이며, 새 시대에 맞게 양국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수교 50주년을 맞는 두 나라 관계는 그동안 어떻게 변했나.

-양국 관계는 지난 50년 동안 국제 환경의 변화, 국제 시스템의 변동에 영향을 받았다. 크게 세 번의 시기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수교 이후 냉전 붕괴까지다. 양측의 상반된 입장을 그대로 둔 채 식민지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 없이 이뤄진 게 1965년 한·일 기본관계조약이다. 냉전이라는 질서 속에서 이뤄진 타협의 산물이었다. 1910년 한국병합조약이 불법이고 부당했다는 한국 주장에 대해 일본 측은 합법적이며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냉전이라는 국제 환경 속에서 안전 보장과 경제 발전이라는 확실한 공동 이익과 목표가 있었다. 수교 결과는 좋았다. 한국은 그 사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달성했다.

→화해를 위한 노력에 어떤 진전이 있었나.

-1989년 냉전 붕괴를 거치면서 동구권이 열리고 국제 협력의 영역이 확대되는 새로운 국제 환경을 맞았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협력 확대가 필요한 시대였다. 1993년 11월 호소카와 모리히로 당시 총리는 경북 경주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군 위안부, 강제 징용 등을 거론하며 “가해자로서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일본 총리의 본격적인 첫 반성인 셈이다. 이는 1995년 무라야마 담화, 1998년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사과 발언으로 이어졌다. 당시 오부치 총리의 사과를 김대중 대통령이 받아들였고, 양측은 파트너십 공동성명을 내며 미래지향적인 데까지 손을 내밀었다. 두 나라가 화해에 가장 근접했던 때였다.

→이 같은 노력은 왜 화해의 결실로 이어지지 못했나.

-90년대는 과거사 반성과 사과가 활발하게 이어지면서 화해를 모색한 때였다. 아쉬운 점은 이 같은 화해의 노력이 구조화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럽과 비교하면 모자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2000년 평양 방문 및 남북 정상회담, 그보다 일찍 가네마루 신 전 부총리의 방북 등 북·일 정상화 시도 등이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 의미에서 1990년 이후 20년은 절반밖에 성공하지 못한 시기였다. 당시 독일의 과거사 반성과 독일 및 프랑스, 폴란드와의 화해 등이 이어졌고 이를 기초로 유럽공동체가 급진전했다. 한편 몇 년 전부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새 시대의 특징은 중국의 강대국화와 영역이 확대된 무역자유화 등이다. 2010년 중국은 국민총생산(GNP)에서 일본을 넘어섰다. 중국 부상 등의 국제적인 구조 변화가 한국 외교에 영향을 줬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중 관계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임기를 시작했고, 한국의 중국 중시 외교가 본격화됐다. 한국은 미국에 이어 중국을 앞에 놓았다. 일본은 그 뒷전으로 밀렸다. 일본에서는 반감이 컸다. 대중, 대미 외교의 성공을 통해 일본에 역사 문제 등을 압박하려는 것으로도 여겼다.

→세 번째 시기의 한·일 관계는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취임한 지 일주일이 흐른 3·1절 연설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는 1000년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는다”며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했다. 취임 일주일 만에 일본에 역사를 바로잡으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미국 방문에 나섰다. 앞서 아소 다로 부총리가 박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가 “역사 해석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는 말을 꺼냈다. 양측의 신경전과 대립이 두드러졌다. 중국 중시 외교에, 아베 신조 총리와의 리더십 충돌까지 겹쳤다. 아베 총리도 잘하지 못했다. “침략의 정의는 확정된 게 없다”는 발언도 했다. 야스쿠니 신사까지 참배하면서 지도력 충돌은 두드러졌다. 한·일 두 리더십의 충돌은 역사 인식의 충돌이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국제 환경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대한 외교 전략의 부딪침도 있었다. 정체성 충돌, 민족 감정 및 전통문화의 대립도 얽혔다. 한국은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과의 관계에 더 힘을 기울였고, 아베 총리도 미·일 관계를 강화하면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한국 관계는 나중에 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앞으로 한·일 관계는 어떤 상황을 맞겠나.

-세 번째 시대를 맞았지만 한·일 관계는 아직 이렇다 할 틀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시대 흐름에 맞는 패러다임을 만들어 낼 때다. 시스템 변동에 따라 한국도, 일본도 하고 싶은 대로 외교를 하고 있다. 그래서 충돌이 생겼고 관계도 나빠졌다. 시대에 맞는 한·일 관계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중국 부상과 자유무역협정(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이 확산되면서 보다 광범위한 경제 통합 시대에 맞게 양국 관계의 틀과 규범을 만들어 나갈 때다. 긍정적인 것은 두 나라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 ‘미들 파워’(중급 파워) 국가라는 점도 그렇다. 둘 다 국가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유사한 산업구조로 경쟁도 치열했지만 생산 과정의 공유 및 분업의 심화로 두 나라 협조 관계는 더 커지는 추세다. 제3세계의 인프라 건설 참여 등에서 보듯 일본과 한국 기업들이 자금력, 정보력의 장점을 서로 나누며 함께 참여하는 예가 늘고 있다. 앞으로도 경제 협력이 두 나라 관계를 선도할 것이다. 서로 더 의존적이고 더 얽히는 상호 의존 관계가 진행될 것이다. 양측의 장점을 합치면 시너지가 배가된다.

→두 나라 관계가 진전될 것이라고 낙관하나.

-두 나라는 비슷한 현안에 직면해 있다. 대립하는 미·중 사이를 어떻게 중재하고 갈등을 완화할 수 있을까 하는 점도 같다. 미·중 간 가교 역할과 시장·경제 통합에서 한·일은 손을 잡고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다. 미·중 입장은 대립 속에 고정돼 있다. 중간에 있는 한·일이 어떻게 생각하고 유도해 나가느냐에 따라 방향과 내용이 결정된다. 캐스팅보트를 쥔 셈이다. 한·일 어느 한 나라만으로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없다. 아세안과 힘을 합쳐 중요한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됐다. ‘중간국’들이 동북아 시스템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커졌다. 한·일이 서로의 대미, 대중 정책을 상의할 수 있을 때 두 나라는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균형의 문제다. 급진전하는 대중 관계를 유지하는 한국과 미국에 밀착한 일본, 두 나라의 장점과 이점을 잘 조화하고 활용해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역사 마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여력과 힘을 잃어 버리면서 ‘불임의 외교’만을 거듭하고 있다.

→두 나라 사이에는 걸림돌이 적지 않다.

-새로운 관계를 이끌어 내려면 박 대통령이 중점을 두는 위안부 문제에서 진전을 거둬야 한다. 새 시대에 맞는 해법을 모색해서, 국제적인 룰에 근거해, ‘전쟁시대의 국제 문제’라는 점에 기반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한·일 간 문제로 국한해 풀려고 해서는 입장 차이 때문에 해법을 내기 어렵다. 전쟁 상황에서의 성폭력 조사와 세계 여러 나라에서의 유사 문제들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며 해결하기 위한 기금 설립 등도 생각해 봄 직하다.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해법의 틀 속에서 프레임워크를 만들어 보자. 일본 정부의 사과를 포함해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 되면 된다. 양국 관계 진전의 모델이 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한·일 관계 진전의 출발점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어려운 점은 한국 비정부기구(NGO)들의 역할이다. 한국 정부가 이들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번에는 한국 정부가 의지를 갖고 이 문제를 매듭짓겠다. 국내 이해 당사자를 설득하고 중지를 모아 여기서 종결시키겠다” 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일본 측이 “이렇게 하면 어떠냐”고 안을 내놓아도 한국 정부는 NGO 등 주변 불만이 크다며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일본 정부도 무엇을 선뜻 내놓기가 어렵다. 한국 측도 이번에는 매듭짓고 받아들이겠다는 준비와 결의가 필요하다.

→아베 총리가 8월에 종전 70주년 담화를 발표한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걱정 어린 시각이 많다.

-한국인을 만족시킬 만한 아베 담화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미국 의회에서 아베 총리가 말한 정도가 되지 않을까. 종전 70주년 담화라는 게 왜 필요한가. 동양권에서 50주년 등은 중시되지만 70주년이 주목받는 것은 아베 총리 스스로가 담화를 하겠다고 해서였다. 그것은 아베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 등에 대해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70주년 담화가 나오고 난 뒤에 한·일 관계는 정상화를 향한 새로운 모색을 하는 출발점에 서게 될 것이다. 연내 한·중·일 정상회담의 틀이나 다자회담의 틀을 빌려 한·일 정상이 만나고 그 장을 빌려 한·일 정상회담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정부는 외교부 사이트에서 한국과 관련해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말까지 빼 버렸다.

-불만이 있어도 그러면 안 되는데…. 내년에는 다시 들어가지 않겠나. 이는 오해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한국이 진짜 민주주의를 하나” “법의 지배를 받나” 하는 의문이 일본에서 생겼다. 산케이신문 기자에 대한 기소나 법원의 대일 관련 판결, 중국에 대한 한국의 자세 등이 얽혀 있다.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의 기본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것은 한·일 관계의 토대다. 한국인은 앞으로 나올 70주년 담화에 실망하고 불만이 크겠지만 그 뒤에 어떻게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새 시대에 맞는 한·일 관계를 만들어 나가자. 과거사는 한·일 관계의 일부, 한 조각일 뿐이다. 양측이 다투면서 서로 얼마나 많은 것들, 소중한 기회들을 잃어 버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서로 공감대가 형성돼야 화해가 가능하다. 한·일은 1965년 큰 타협을 이뤄냈지만 서로 이해하는 공감대는 모자랐다. 완전한 화해를 위해 발걸음을 옮기자. 실현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자꾸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게 옳은 길이다.

글 사진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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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노기 마사오 日 게이오대 교수
오코노기 마사오 日 게이오대 교수


■오코노기 교수

일본의 대표적인 지한파 학자다. 1945년생으로 그가 재직하는 게이오대를 중심으로 일본 전역에 ‘오코노기 학파’가 퍼져 있다. 그만큼 많은 한반도 전문가를 배출했다.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 프로젝트 위원장으로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청사진 마련을 주도했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자문기관인 ‘대외 태스크포스’ 위원,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의 자문기구인 ‘외교정책연구회’ 위원 등을 지내며 일본의 한반도 정책 결정에 관여했다. 1972년부터 2년여 동안 연세대에 유학하면서 ‘7·4남북공동선언’ ‘10월 유신’ ‘김대중 납치사건’ ‘민청학련사건’ 등을 지켜봤다. ‘한국 오코노기 연구회’가 있을 정도로 국내에 지인과 친구들이 많다. ‘조선전쟁’(중앙공론사), ‘일본과 북조선’(PHP연구소) 등의 저서가 있다.
2015-06-22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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