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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이불여일행] ‘속마음버스’ 소중한 사람과 떠난 마음여행

[백문이불여일행] ‘속마음버스’ 소중한 사람과 떠난 마음여행

김유민 기자
김유민 기자
입력 2015-12-14 16:03
업데이트 2015-12-1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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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 힐링 프로젝트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

해가 진 저녁, 여의도 3번 출구에 있는 속마음버스에 탔습니다.
해가 진 저녁, 여의도 3번 출구에 있는 속마음버스에 탔습니다.
여의도역 3번 출구. 낡은 버스 한 대가 탑승자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9인승 버스에 탑승객은 네 명. 여의도를 출발해 자유로, 상암동을 지나 다시 여의도로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90분간 무료로 운행되는 이 버스는 번호 대신 ‘속마음’을 달고 달립니다.

지난 11일 이 버스의 1803번째 탑승자가 되었습니다. 사연의 주인공인 친구와 함께 버스에 올랐습니다. 의자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커튼을 칩니다. 따뜻한 음료와 과자, 클래식 음악이 준비됩니다. 친구와 마주앉아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조금 어색합니다.

안내멘트에 따라 스피커를 켜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낯선 목소리로 녹음된 익숙한 사연입니다. “늘 자신감 넘치던 친구가 인턴을 하면서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그래도 취업을 위해 모든 과정을 참고 견뎌냈는데 최종에서 떨어졌습니다. 4개월 동안 무기력하게 지내는 친구를 보며 위로의 말을 하고 싶었는데, 조심스러웠어요. 이번 기회를 통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테니 힘내라고 말하고 싶어요.” 친구가 씨-익 웃습니다. 마음 한 구석이 뭉클해집니다.

버스 안에서는 모래시계로 대화를 합니다. 준비된 종이에 대화주제를 적었습니다. ‘고마움, 서운함, 바라는 것’ 3분짜리 모래시계를 뒤집고 한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 맞은편 사람은 귀 기울여 듣습니다. 이때 ‘침묵’을 지켜야 합니다. 듣는 사람은 ‘예, 아니오’ 등 어떤 말도 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차례가 오면 느낌과 기분 등을 이야기합니다.

속마음 버스안에서는 상대방이 얘기할 때, 말을 하는 대신 귀를 기울입니다.
속마음 버스안에서는 상대방이 얘기할 때, 말을 하는 대신 귀를 기울입니다.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왜 이리 어려웠을까요. ‘가까우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겠지’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버스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고맙다”, “미안하다” 말하라고 알려줍니다.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던 친구는 “일을 하고 있는 네가 그렇지 않은 나를 배려해줘서 정말 고마웠어”라고 말했습니다. 갑자기 울컥하고 촉촉해진 눈을 휴지로 꾹꾹 눌렀습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속마음을 나누는 90분. 말하고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실감했습니다. 2014년 3월 31일 출발한 속마음버스는 현재까지 총 2900여명이 탑승했는데요. “마음을 나누고 왔다”,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어 좋았다”는 후기가 많습니다. 관계도 연인, 친구, 부부, 부모와 자녀 등 다양합니다.

같은 버스에 탄 30대 커플은 “결혼을 앞두고 갈등이 많았는데 버스에 올라 속마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나니 한결 편안해졌다”며 “서울 야경을 보며 색다른 추억을 만든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런 시간을 많이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만족스러워 했습니다.

가장 인상깊었던 탑승객은 80대 노부부라고 합니다. “작년 겨울쯤 80대 노부부가 탑승하셨어요. 따님이 결혼기념일을 맞이해 부모님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사연을 올리셨거든요. 얼마 전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따님께서 그 때 그 추억 때문에 참 행복해하셨다고 전화해주신 것이 기억에 남아요. 국제결혼을 한 부부도 가끔 찾으시고요. 내일도 부인이 일본 분인 남편 분이 탑승하세요.”

황소영 총괄기획담당자는 “가까운 사람들끼리 진솔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속마음버스가 생겼다”며 “일상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여행을 떠난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 도심에서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이동수단인 버스를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서울 시민이라면 누구나 ‘속마음 버스’ 홈페이지에서 탑승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참가 2주전에 사연을 신청하면 됩니다. 이번 기회에 소중한 사람과 ‘마음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백문이불여일행(百聞不如一行) 백번 듣고 보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실제로 해보는 것, 느끼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보고 듣는 것’ 말고 ‘해 보고’ 쓰고 싶어서 시작된 글. 일주일이란 시간동안 무엇을 해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누고 이야기하고 싶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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