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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이불여일행] 얼어붙은 구세군 빨간 냄비, 그래도 산타는 있었다

[백문이불여일행] 얼어붙은 구세군 빨간 냄비, 그래도 산타는 있었다

김유민 기자
김유민 기자
입력 2015-12-28 14:12
업데이트 2015-12-2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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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이불여일행] 크리스마스이브 구세군 자원냄비 봉사를 직접 해봤습니다.
[백문이불여일행] 크리스마스이브 구세군 자원냄비 봉사를 직접 해봤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빨간 냄비. 오들오들 떨고 있는 자원봉사자에게 다가가 빨간 조끼와 종을 건네받았습니다. 도톰하게 옷을 갖춰 입었다 생각했는데 벌써 일곱 번째 봉사라는 아주머니에게 한 소리 들었습니다. 정말 춥다며, 장갑은 왜 안 가져왔냐며 가방에서 핫팩 세 개를 꺼내 손에 쥐어줍니다. “딸 학교 보내고 왔는데, 춥긴 하지만 보람 있어.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일이니까.”

2인1조로 진행되는 자선냄비 봉사. 함께할 봉사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째 기다려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습니다. 봉사에도 노쇼(No-show:예약부도)가 있나봅니다. 구세군 관계자는 “약속한 당일에 갑자기 연락이 안 되시는 분들이 있다. 그러면 달리 방도가 없다”며 씁쓸한 미소를 짓습니다. 자원봉사자 수도 부쩍 줄었습니다. 과거엔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등의 참여가 많았지만 추운 겨울 날씨에 길거리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선호도가 높지 않습니다.

결국 혼자서 종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종이 위를 향하게 들고 ‘땡-땡-’ 사람이 지나다닐 때 종을 울리되, 너무 자주 흔들지 않도록 합니다. 거리에선 좀 더 영롱하고 맑은 소리였는데 직접 치니 둔탁하게 들리는 건 기분 탓일까요. 캐럴도 뜸한 요즘 같은 때엔 구세군 종소리가 연말 분위기를 내주는 것 같습니다.

불경기에… 불신에… 2시간 모금액 달랑 2만470원

거리엔 예쁘고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약속을 앞둔 얼굴엔 설렘과 행복감이 묻어있는데요. 어느 순간 저는 거리의 풍경이 되 버린 듯합니다. 자선냄비의 열기가 얼어붙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평일의 다섯 배정도 모금이 된다는 크리스마스이브. 서울 한복판에서 두 시간동안 모인 금액은 20470원입니다.

지나가던 할머니는 “차라리 나 같은 사람한테 돈을 줘야지!”라며 있는 힘껏 제 배를 치고 갑니다. 자선냄비에 대한 불신 때문일 겁니다. 저 또한 봉사를 앞두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다 구세군 주머니로 들어간다.”, “기부? 어디 쓰일지도 모르는데 못 믿겠다.”, “구세군 비리사건 쳐봐라.” 등의 댓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틀린 이야기입니다. 지난 2010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성금유용 및 직원 비리사건이 이와 무관한 구세군과 여러 구호단체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진 것입니다. 일차적인 책임은 비리에 연루된 단체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거둔다면 정작 피해를 보는 것은 비리 단체가 아닌 소외된 이웃들일 것입니다. 복지 기금을 좋은 곳에 잘 쓰고 있는 선의의 구호단체들까지 매도하는 시선은 잘못된 것 아닐까요.

한국에선 올해로 87년이 된 구세군 성금은 100% 모두 기초생활수급대상자 및 재해민 구호, 심장병 환자 치료 및 빈곤가정 의료 지원, 실직자 및 다문화가족 지원 등 다양한 사회복지 활동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용내역은 구세군 대한본영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세군 측은 “회계전문가를 고용해 모금을 하는 대외홍보부, 자금관리를 하는 재무부, 성금을 실제 이웃에게 전달하는 사회복지부 등이 서로 견제·감독하도록 하고, 외부적으로는 공인회계법인에 의뢰해 매년 결산내용을 검증받고 행정안전부에도 모금 내역을 신고하고 점검받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백문이불여일행] 직접 만나 받은 도움의 손길들은 따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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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속 동전까지 탈탈…달리는 택시에서…고마운 손길들

부쩍 추워진 날씨에 시민들은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첫 기부자는 남학생이었는데요. 쭈뼛쭈뼛 넣어준 동전이 고맙습니다. 조금 있더니 친구들을 불러와 주머니 속 동전을 모두 냄비에 넣어주었습니다. 그 모습이 재밌어 사진을 찍었는데요. “사진도 찍어요?”라며 연신 V자를 그리며 웃습니다.

이날 만난 9명의 기부자 중 5명이 아이들이었는데요. 1000원짜리 한 장을 올려두고 엄마 품으로 후다닥 뛰어가던 남자아이, 아빠가 준 10000원을 넣고 인사까지 꾸벅 해주던 여자아이가 기억에 남습니다. 택시기사아저씨는 바쁜 와중에도 창문을 내리고 5000원을 기부해주었습니다.

외국인 기부자도 많았는데요. 중국유학생 커플은 1000원을 넣고, 핸드크림 기념품을 나눠주자 미안한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한 시민이 벌겋게 얼어버린 손에 쥐어주고 간 두유는 참 따뜻했습니다.

살기가 참 퍽퍽합니다. 물가는 오르고 버는 돈은 늘 제자리입니다. 그나마도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세상입니다. 바짝 얼어붙은 경기지만 그 속에서 따스한 순간들을 발견한 연말이었습니다.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연탄재 역할을 한 자선냄비는 결코 나와 무관한 이웃들에 대한 구호가 아닌 내 이웃에 대한 나눔이란 생각입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 ‘너에게 묻는다’ 中)

백문이불여일행(百聞不如一行) 백번 듣고 보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실제로 해보는 것, 느끼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보고 듣는 것’ 말고 ‘해 보고’ 쓰고 싶어서 시작된 글. 일주일이란 시간동안 무엇을 해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누고 이야기하고 싶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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