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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훈의 글로벌 리더십 읽기] 문화지능

[남상훈의 글로벌 리더십 읽기] 문화지능

입력 2017-03-10 17:52
업데이트 2017-03-1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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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훈 캐나다 빅토리아대 경영대 교수
남상훈 캐나다 빅토리아대 경영대 교수
미국인 스티브. 아이비리그 공학도 출신. 교환 학생으로 상하이에서 한 학기 지낸 적이 있음. 졸업 후 미시간주 소재 첫 직장에서 3년 경력을 쌓은 뒤 캐나다 몬트리올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으로 이직. 탁월한 업무 지식과 꼼꼼한 일 처리 능력으로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순조롭게 승진해 오다가 아시아의 허브로 전략적 중요성이 높은 한국 법인의 생산담당 임원으로 발탁. 3년 계약으로 배우자, 두 자녀와 함께 옴. 그러나 기대와 다르게 상황이 전개되며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등 스트레스를 많이 받음. 배우자는 배우자대로 외로움, 답답함, 우울증 등 한국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본국으로 돌아가기를 요구. 결국 4개월 만에 중도 하차함.

제대로 일을 해 보지도 못한 채 전격적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기로 한 스티브와 그 가족의 선택이 다소 극단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글로벌 경영의 현실에서 이러한 경우는 생각보다 많이 발생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 기업에서 외국으로 파견된 인재들 중 약 25%에서 40%가 스티브와 같은 실패를 경험한다. 나라에 따라 이 실패율이 70%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경영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미숙 귀환’ 혹은 ‘조기 귀환’이라 부른다. 보통 3~5년의 계약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본국으로 쓸쓸한 퇴장을 한다는 뜻이다.

본인의 경력에도 실패의 큰 오점을 남기는 것이지만 해외 파견자 한 사람당 대략 1억원에서 10억원까지 부대비용이 들어가는 값비싼 인재들의 높은 실패율은 다국적기업들의 심각한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미숙 귀환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지에 남아 있으면서 현지인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고 저조한 업무성과 등 경영상 실패의 사례도 흔하다. “얼마나 많은 해외 파견자들이 실패하는지는 인사 담당자들 사이에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는 비밀이다.” 세계적 헤드헌터사 콘페리 인사담당 부사장의 관찰이다. 실패는 감추고 성공은 과대 포장하는 기업의 일반적인 속성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해외 현장에 나가 있는 실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우리나라의 해외 파견자들의 실패 사례가 상당히 많고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최근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에서 발생한 종업원들의 폭동 사건은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자체만으로도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조차 글로벌 기업으로서 갖고 있는 한계 및 문제의 심각성의 깊이를 가늠하게 한다.

왜 실패하는 것일까. 일을 잘하는 사람들을 선발해 해외에 보내면 맥을 못 추는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은 것일까. 이 흥미로운 질문은 글로벌 리더의 핵심적인 자격 요건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안에 ‘(국내의) 성공은 (외국에서) 실패의 어머니’라는 역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리더십은 상황적이다. 미국에서 성공한 리더십이 한국에서는 실패를, 한국에서 통하는 리더십이 베트남에서는 종업원들의 반발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원리를 모르고 자신은 이전에 하던 대로 했기 때문에 잘못한 것이 없다고 믿으며 실패의 탓을 외부, 즉 현지인들에게 돌려 ‘게으르다, 충성심이 없다’ 등의 부정적인 시각으로 대하면서 점점 악화되는 상황을 방치하다 보면 급기야 폭동까지 발생하는 극한에 이르게도 되는 것이다. 무지보다 더 위험한 것이 알고 있다는 환상이다.

이렇게 문제를 일으키는 해외 파견자들에게 공통적으로 결핍된 것이 있다. 바로 문화지능(CQ·Cultural Intelligence)이다. 이는 논리적 문제 해결 능력인 IQ, 대인 관계 능력인 감성지수(EQ)와 다른 별개의 능력이다. 문화 차이에 대한 이해, 상대하는 외국인들에게서 원하는 반응을 끌어 낼 수 있는 행동, 문화 충격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쉽게 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정서적 능력, 그리고 자신에 대한 관찰을 통해 꾸준히 자기 개선을 할 줄 아는 성찰의 능력. 이런 능력들을 갖춘 인재들을 선발해 해외 파견자로 내보내면 실패율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하나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배우자 문화지능의 중요성이다. 이(異)문화 적응에 실패한 아내의 불행은 결국 온 가족의 불행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017-03-1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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