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에르도안 ‘무소불위 술탄’… 과거로 간 터키

에르도안 ‘무소불위 술탄’… 과거로 간 터키

하종훈 기자
하종훈 기자
입력 2017-04-17 23:04
업데이트 2017-04-18 01:22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공화정 94년 만에 ‘제왕적 대통령제’ 개헌 국민투표 통과

세속주의서 정교일치 국가 추구
80세 되는 2034년까지 집권 가능
의회 해산권 등 입법·사법까지 장악
숙원이던 EU 가입 포기 가능성
서구, 이슬람국가 완충지대 잃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밤 국민투표에서 대통령 중심제 개헌안 통과가 확실시된 뒤 이스탄불에서 열린 축하 집회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화답하고 있다. 이스탄불 EPA 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밤 국민투표에서 대통령 중심제 개헌안 통과가 확실시된 뒤 이스탄불에서 열린 축하 집회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화답하고 있다.
이스탄불 EPA 연합뉴스
터키의 ‘국부’(國父)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1923년 공화정을 수립한 지 94년 만에 터키 정부 형태를 의원내각제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로 바꾸는 개헌안이 16일(현지시간) 국민투표에서 통과됐다. ‘21세기 술탄’으로 불리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2034년까지 장기 집권하는 토대를 마련한 것은 물론 ‘서구 지향적 세속주의 국가’ 터키가 권위주의적 이슬람 국가로 회귀하는 분기점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터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유권자 5836만여명 가운데 5060만여명(87%)이 참여한 이번 투표에서 개헌안이 찬성 51.4%, 반대 48.6%로 가결됐다고 밝혔다고 AP 통신 등이 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밤 연설에서 “명백한 승리”라고 강조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3년 총리가 된 이후 지금까지 터키를 통치해 오고 있다. 2007년, 2011년 총선을 거치면서 총리직 4연임 금지 규정에 가로막히자 2014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뒤 현 의원내각제 헌법에서도 실질적 1인자의 지위를 누려 왔다.

이번 개헌안 가결에 따라 2019년 11월 대선 이후 새 헌법에 따른 새 정부가 시작된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며 1회 중임할 수 있어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9년에 이어 2024년 대선에서도 승리한다면 2029년까지 집권하게 된다.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는 터키인들이 16일(현지시간) 밤 터키 정부 형태를 의원내각제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로 바꾸는 개헌안 국민투표에서 찬성 51.4%, 반대 48.6%로 개헌안이 통과되자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 하고 있다. 베를린 AFP 연합뉴스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는 터키인들이 16일(현지시간) 밤 터키 정부 형태를 의원내각제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로 바꾸는 개헌안 국민투표에서 찬성 51.4%, 반대 48.6%로 개헌안이 통과되자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 하고 있다.
베를린 AFP 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밤 터키 이스탄불 탁심 광장에서는 국민투표 결과에 찬성하는 축하 집회가 열렸다. 사진은 한 소년이 터키 국기를 손에 들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이스탄불 AFP 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밤 터키 이스탄불 탁심 광장에서는 국민투표 결과에 찬성하는 축하 집회가 열렸다. 사진은 한 소년이 터키 국기를 손에 들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이스탄불 AFP 연합뉴스
하지만 새 헌법은 중임한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다시 조기 대선에 출마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2029년 임기 만료 직전 조기 대선을 실시한다면 2034년까지도 재임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총리직이 없어지는 대신 대통령이 부통령을 임명할 수 있고 대통령은 법관 임명권과 의회 해산권도 갖게 되는 등 사법부와 입법부의 견제도 약화된다. 가디언은 “터키가 병든 민주주의 체제에서 권위주의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터키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28개 회원국 중 2개국에 불과한 이슬람 국가이자 러시아와 흑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서방세계의 전략적 요충지다. 특히 시리아, 이라크와 인접해 있어 테러 집단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터키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이슬람주의와 화해하고 공존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꼽혀 왔다.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경제성장과 국민 지지를 등에 업고 과감하게 자기 색깔을 내 왔다. 국부 케말 아타튀르크 이후 지켜 온 서구 지향적 정교분리와 세속주의 전통을 버리고 이슬람을 전면에 내걸고 있다. 공공 장소와 대학 등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하던 것을 2008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도 했다.

에르도안이 총리로 재임했던 초기 5년(2003~2007년)간 경제성장률은 평균 7%에 달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인 2010~2011년에는 8%대 성장률을 유지해 왔고 지난해 7월 세속주의를 지지하는 군부 쿠데타 진압 이후에는 지지율이 70%에 육박했다.

실제로 이번 투표 결과 지역별로 이스탄불, 앙카라 등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에서는 개헌 반대표가 앞섰지만 보수적인 내륙 도시에서는 찬성표로 몰렸다. 이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친(親)이슬람, 반(反)서방 기조가 주효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번 개헌안 통과로 터키가 숙원이던 유럽연합(EU) 가입을 포기할 가능성도 커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탄불에서 국민투표 승리를 선언한 뒤 지지자들에게 첫 메시지로 “(2004년 폐지된) 사형제 부활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공언했다. EU는 사형제 국가의 회원국 가입은 금지하고 있다. EU는 터키의 EU 가입 협상을 신속히 진행시키는 대가로 지난해 3월 터키와 맺은 난민송환협정이 폐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데이비드 필립스 컬럼비아대 인권연구센터 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터키의 서방 지향은 이제 끝났다”고 평가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2017-04-18 16면

많이 본 뉴스

  • 4.10 총선
저출생 왜 점점 심해질까?
저출생 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인구 소멸’이라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저출생이 심화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녀 양육 경제적 부담과 지원 부족
취업·고용 불안정 등 소득 불안
집값 등 과도한 주거 비용
출산·육아 등 여성의 경력단절
기타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