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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에세이] 중앙·지방 인사교류와 따뜻한 행정/정재근 유엔거버넌스센터원장·전 행정자치부 차관·시인

[수요 에세이] 중앙·지방 인사교류와 따뜻한 행정/정재근 유엔거버넌스센터원장·전 행정자치부 차관·시인

입력 2017-05-30 22:28
업데이트 2017-05-3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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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근 유엔거버넌스 원장, 시인, 전 행정자치부 차관
정재근 유엔거버넌스 원장, 시인, 전 행정자치부 차관
외환고 부족으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를 받은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1997년 겨울, 필자는 미국 미시간대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있었다. 1달러에 2500원까지 치솟는 환율을 겪으며 국비유학을 하던 공무원 학생들은 정부의 귀국 명령에 대비해 생활을 정리하고 있었다. 정부는 생활비를 줄였지만 예상과 달리 당초 계획된 학업을 계속 지원했다. 1달러가 아까운 상황에서, 온 국민이 금을 모아서라도 텅텅 빈 외환창고를 채우려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대한민국은 학생들의 학업을 끊지 않았다.

그 후 필자는 학교의 보증으로 은행에서 생활비를 빌려 박사 공부까지 하고 귀국했다. 몇 년 뒤 충남도 기획관리실장으로 부임해 신고한 재산은 마이너스 3000만원이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 공부 덕분에 늘 자문교수들 앞에서 자신감에 넘쳤고, 어려운 일에 꽤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는 인정을 받았고, 외교관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유엔 공무원도 됐으니 아주 성공한 투자다. 이런 경험을 통해 국가도 개인도 사람에게 투자하면 그것은 미래에 대한 투자이고 희망에 대한 투자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이제 새 정부는 사람에 대해, 특히 공무원에 대해 어떻게 투자해야 할까. 국민이 원하는 공무원을 만들기 위한 투자여야 한다. 국민은 무엇보다도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의 아픔을 내 가족의 아픔으로 공감하는, 감성이 꿈틀대는 공무원을 바란다. 고통받는 한 사람의 국민을 말없이 포옹하고 함께 눈물 흘리는 대통령의 모습을 100만 공무원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따뜻한 공무원이 유능하기까지 하면 얼마나 좋을까. 유능한 공무원은 나와 내 조직의 울타리를 넘어 모든 이해관계자와 소통하고 협력해 문제를 해결한다. 결국 국민은 ‘따뜻하고 유능한 공무원’을 원한다. 그럼 이런 공무원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단언컨대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인적교류가 그 시작이자 끝이다. 복지부 공무원이 일선 시·군과 읍·면·동 복지담당 공무원의 어려움과 보람을 알지 못하고 어떻게 국민의 심금을 울리는 정책을 생산할 수 있을까.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AI) 살처분 비용을 지원하는 중앙공무원은 오리, 돼지 등을 매몰할 때 현장 공무원들의, 마주친 가축의 맑은 눈동자로 인한 트라우마를 알아야 한다. 자치와 분권이 국가의 통합성을 저해하는 비효율적 제도이고, 지방공무원은 기획 능력에 처지며, 예산만 보내면 당초 정책 목표대로 잘 집행될 것이라고 믿는 중앙공무원이 있다면 시·도와 시·군 행정의 역동성과 공감성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매일 주민과 만나 주민과 호흡하는 감성과 공감의 공무원이다. 종일 주민 민원을 들으며 함께 아파해 주기만 해도 문제의 절반은 풀린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이다. 지방공무원은 국장, 기획관리실장, 부지사로 승진해서 내려오는 중앙공무원을 고깝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정책 입안과 분석을 위해 서기관, 부이사관도 연필 들고 직접 보고서를 만들며 밤늦게까지 일하고 새벽부터 교통 지옥에 시달리며 젊은 날을 보냈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중앙공무원의 일을 되게 만드는 방식은 배울 만하다.

인적교류를 통해 중앙공무원은 주민과 공감하는 따뜻한 행정을 체험할 수 있다. 중앙에서 만든 정책이 집행현장에서 왜곡되는 원인을 캐낼 수 있다. 지방공무원은 중앙부처에서 정책이 형성되는 과정과 의도를 면밀히 체득한 후 효율적 집행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일선현장의 문제를 정책 형성 과정에 직접 투여할 수 있다.

중앙·지방 인적교류를 위해서는 현재의 직위만을 가지고 교류하려 했던 기존 인사정책의 한계를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전 중앙부처와 지자체에 교류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추가 직위를 충분히 만들고 교류공무원들에게 주거비 등을 과감히 지원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고위공무원이 되려면 반드시 지방 경험을 하게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형 재해·재난·사고,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구제역과 같은 현장 문제를 예방하거나 중앙과 지방이 함께 해결할 수 있다면 투자 비용은 단번에 회수된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환호하는 공감정책을 섬세히 만들 수 있고, 이들 정책이 실제 주민의 품에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2017-05-3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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