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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뒤집힌 게’와 검찰 개혁/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뒤집힌 게’와 검찰 개혁/최광숙 논설위원

최광숙 기자
최광숙 기자
입력 2017-06-11 22:38
업데이트 2017-06-11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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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유화 ‘두 마리의 게’를 보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게 한 마리는 똑바로 있지만 다른 게는 등이 바닥으로 뒤집혀 발가락이 발버둥치고 있다. 이 작품은 고흐가 정신병으로 스스로 귀를 자른 후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이후인 1889년에 그렸다. 이 작품을 그리고 1년 뒤 그는 자살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이 작품이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꾸며 고갱과 함께 살면서 게 요리를 해 먹던 고흐의 ‘밥상 공동체’를 보여준다고 평한다. 반면 법의학자 문국진 고려대 명예교수는 저서 ‘반 고흐, 죽음의 비밀’에서 뒤집힌 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흐 자신이고, 그렇지 않은 게는 고흐의 동생 테오라고 봤다. 테오는 편지와 함께 생활비를 보내는 등 평생 형을 돌본 후원자다.

이 그림은 고흐가 1888년 동생 테오가 보내준 잡지 ‘일본의 예술가들’에 나온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작품 ‘두 마리의 게’를 보고 영감을 받아 그렸다고 한다. 호쿠사이는 19세기 모네 등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일본 화가다.

게 그림은 일본뿐 아니라 장승업을 비롯한 조선시대의 많은 화가들도 즐겨 그렸던 테마다. 우리 옛 조상은 전진과 후퇴가 분명한 게를 청렴성의 상징으로 삼았다. 또 갑옷처럼 단단한 껍질에 싸여 있어 갑옷 갑(鉀)과 같은 음인 으뜸 갑(甲), 즉 과거에 급제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보통 게 두 마리와 갈대를 같이 그렸는데 두 번의 으뜸, 즉 과거시험인 소과와 대과에 연달아 급제해 임금으로부터 음식을 하사받는 것을 뜻한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페이스북에 고흐의 ‘두 마리의 게’ 사진을 올리면서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검찰의 현주소를 뒤집힌 게에 비유하며 “게는 한 번 뒤집히면 결코 혼자서는 돌아누울 수 없으며 그래서 게가 뒤집혔다는 건 죽음을 뜻한다”고 썼다.

그는 “내심 뒤집힌 게와 달리 검찰 스스로 돌아누울 수 있기를 바라며 시간을 기다려왔다”며 “하지만 이번에도 결국 내부 복원력을 갖지 못한 채 인사라는 칼에 몸을 내맡기고 말았다”고 했다.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다가 결국 ‘우병우 사단’들이 줄줄이 좌천된 상황을 비판한 것이다.

어느 정권에서나 검찰은 ‘갑 중의 갑’으로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했다. 특히 국정 농단 사태에서 보여준 검찰의 행태는 스스로 등을 뒤집는 바람에 한 걸음도 못 나가는 게들의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인사는 권력에 줄 서던 검찰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앞으로 사람, 정권에 충성하지 않는 검찰로 거듭나길 바란다.

최광숙 논설위원

2017-06-1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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