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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슈퍼버그’ 발생 늦추는 백신… 남의 아이도 지켜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슈퍼버그’ 발생 늦추는 백신… 남의 아이도 지켜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17-07-25 18:12
업데이트 2017-10-2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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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안아키’라는 인터넷 카페가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약 안 쓰고 아이들을 키우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극단적인 자연주의 육아사이트로, 한번 수두에 걸리면 항체가 생긴다는 이유로 예방접종을 하지 않고 일부러 아이들에게 수두를 옮기기 위해 ‘수두 파티’까지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 시민단체가 의료법 위반과 아동학대 혐의로 카페 운영자와 회원 70여명을 경찰에 고발한 상태입니다.

사실 백신에 대한 불신은 백신 접종법이 처음 개발된 18세기부터 시작됐습니다.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1749~1823)가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해 우두 고름을 직접 사람에게 접종하려고 하자 언론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우두백신을 맞으면 소로 변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퍼트렸습니다.

19세기 말 프랑스 루이 파스퇴르 박사가 제너의 방식을 활용해 광견병 예방 백신을 개발하고 그 후에 소아마비, 장티푸스 등 많은 질병의 백신들이 나와 수많은 전염병을 정복하면서 백신 반대 의견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그러다가 1998년 저명한 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랜싯’에 영국 대장외과 전문의 앤드루 웨이크필드가 자폐증 어린이 12명을 대상으로 연구해 ‘MMR(홍역·유행성이하선염·풍진)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시킨다’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백신 거부론이 재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실험 대상군이 지나치게 적고 비교할 대조군이 없었으며 방법론에 문제가 있고 내용까지 조작됐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2008년에 웨이크필드는 의사면허가 박탈되고 해당 논문도 철회됐습니다. 그럼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백신 반대론자들은 여전히 해당 논문의 주장을 맹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많은 과학자와 역학자의 연구는 백신 반대론이 ‘근거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는 최신호에 “약물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 일명 ‘슈퍼버그’와의 전쟁에서 깜박하고 있는 무기가 바로 백신”이라는 내용의 분석을 실었습니다. 이달 초 글로벌 제약사 GSK(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벨기에 와브르 연구센터에서 열린 제약 관련 콘퍼런스에서 항생제 내성균의 등장과 확산을 막기 위해 백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사실 많은 제약사와 공중보건 관련 기관들이 거액의 연구자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슈퍼버그를 막을 수 있는 신개념의 항생제 개발은 요원한 것 같습니다. 연구자들과 예방의학자들이 백신의 새로운 효과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2011~2014년 유럽에서 독감백신을 맞은 어린이들은 백신을 맞지 않은 아이들보다 증상이 약하고 독감의 부수 반응으로 나타나는 각종 감염증에 대한 항생제 사용도 절반 이하였다고 합니다. 지난 10일 ‘랜싯’에 B형 뇌수막염 백신이 항생제 내성이 생긴 난치성 임질을 치료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백신을 사용할 경우 체내에서 미생물이 증식하거나 진화할 기회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약물내성 병원균의 등장을 지연시킬 수 있습니다. 항생제는 이미 몸속에서 병원균의 밀도가 높아진 상태, 즉 감염이 된 뒤 투여하기 때문에 항생제의 공격을 피해 슈퍼버그로 진화할 수 있는 세균의 수가 그만큼 많아진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본인이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자유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신을 맞든 안 맞든 내 맘’이라는 생각이 가족이나 사회 전체의 집단면역이라는 공중보건 시스템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edmondy@seoul.co.kr

2017-07-2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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