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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Out] 학교 내 종교 강요, 이대로 안 된다/류상태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대표

[In&Out] 학교 내 종교 강요, 이대로 안 된다/류상태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대표

입력 2017-08-17 20:48
업데이트 2017-08-17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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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거의 잊혀졌지만, 13년 전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종교 관련 사건이 있었다. 서울 대광고 3학년생이자 학생회장이었던 강의석군이 교내 방송을 통해 “강요되는 예배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강군은 46일간에 걸친 단식투쟁 끝에 예배선택권을 얻어 냈지만 학교가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이 문제는 이듬해에 법정으로 갔다. 5년이 지난 2010년 4월 22일 최종 판결이 나왔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고 강제로 종교교육을 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그러나 이 판결 이후 학생들에게 예배선택권을 준 기독교계 사립학교는 많지 않다.
류상태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대표
류상태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대표
학교 내 종교 강요에 대한 대학생들의 저항은 강군 사건보다 앞선다. 1995년 숭실대 학생이 6학기 동안 채플(기독교 학교의 교내 예배의식) 이수를 졸업 요건으로 정한 학칙이 종교의 자유를 침범한 것이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결과는 학생의 패소로 끝났다. 2003년에는 이화여대에서 ‘채플반대모임’이 결성됐다. “신을 위해 기도할 권리만큼 기도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 “나는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 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당시 채플반대모임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들이다. 2003년 명지대, 2004년 연세대, 2006년 다시 숭실대에서 채플반대운동이 연이어 일어났다. 그러나 대학생들의 법적 소송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강의석군이 제기한 고교와는 달리 대학은 학생 스스로 학교를 선택해 입학했다는 이유에서다. 절대 강자인 학교와 약자인 학생 간의 불공정 계약이라는 학생들의 주장은 무시됐다.

대학생들의 채플반대운동은 2006년 숭실대 사건을 정점으로 가라앉은 분위기다. 학생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기독교 학교의 유연한 대응으로 학생들의 불만이 상당 부분 누그러졌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대학뿐 아니라 중·고교도 종전 경직된 의식에서 벗어나 저명 인사 초청 강연, 뮤지컬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 학생들의 거부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내용을 유연하게 바꾼다고 강제 참석제의 문제점이 사라지는 것일까?

기독교 학교 운영자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 싶다. 기독교는 절대자를 인격신으로 고백한다. 예배의식은 그 신과 소통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하느님에 대해 사랑을 고백하고 설교자를 통해 신의 음성을 듣는다. 죄를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결단도 예배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학생들의 기호에 맞춘 변형된 채플, 그대로 괜찮은 걸까. 예배의 중요 요소가 실종된 채 춤, 노래로 채워진 채플을 기독교 인격신은 어떤 마음으로 내려다보고 계실까. 어쩌면 그것이 기독교의 종교적 품위를 떨어뜨리고 하느님은 물론 경건해야 할 예배 자체까지 모독하는 건 아닐까. 기독교 학교의 정체성을 위해 꼭 필요하다면 희망 학생만 자율적으로 참여토록 해 제대로 격식을 갖춰 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

미국 기독교 학교인 하버드대는 1986년 의무 채플을 중단했다. 일본의 대표적 기독교 학교 도시샤대학은 1960년대에 채플이 자율화됐다. 종교의 자유란 ‘종교를 선택할 자유’와 ‘종교를 거부할 자유’,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전할 자유’, ‘종교를 (합법적 범위 안에서) 교육할 자유’를 포함한다. 기독교 학교의 ‘종교교육을 할 권리’와 학생들의 ‘종교를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를 동시에 충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중·고교에선 대법원 판결대로 학생들에게 예배선택권을 주고, 대학에서는 필수 이수 과목인 채플을 선택 과목으로 바꾸는 것이다.
2017-08-1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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