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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의 아침] 문화 이벤트 과잉의 시대/함혜리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문화 이벤트 과잉의 시대/함혜리 문화부 선임기자

함혜리 기자
입력 2017-10-18 17:52
업데이트 2017-10-19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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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지도 덥지도 않은 요즘 전국적으로 약속이나 한 듯이 각종 문화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인 줄 알았더니 이젠 아닌 모양이다. 차분하게 책을 읽으며 나의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가만두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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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리 문화부 선임기자
함혜리 문화부 선임기자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부터 부산 바다미술제, 청주 공예비엔날레, 경기 도자비엔날레, 제주 비엔날레 등 격년제로 열리는 굵직한 비엔날레 성격의 행사들에 이어 각 도시와 지자체가 주관하는 크고 작은 문화 행사들이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지역의 문화 행사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후부터지만 최근 들어 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면서 우후죽순 격으로 급증하고 있다.

지자체장들은 문화 이벤트 강박증을 가진 것 같다. 왜 없어도 그만인 그저 그런 문화 행사들이 그렇게 많이 열리는 것인가. 겉으로는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높이고 문화 복지를 실현하는 행사라고 내세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단체장의 업적 쌓기를 통한 문화 정치적 성격이 매우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제대로 된 전시를 할 만한 조직과 예산도 없이 철저한 준비와 노력도 없이 흉내만 내는 경우가 태반이다. 흉내도 제대로 내면 감사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기대를 갖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가 보면 역시나 실망만을 안겨 준다.

차라리 없었으면 좋을 조형물들이 자연 풍광을 해치며 거북하게 자리 잡고 있거나 지역 작가 우대 차원에서 내준 공간에 학예회 수준의 작품이 마구잡이로 걸려 있기도 하다. ‘국제’가 붙은 행사에는 외국 작가라고 초대를 하지만 그 정도의 작가는 국내에도 많은데 왜 굳이 돈 들여서 초대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앙정부가 주관하는 행사라고 예외가 되지 않는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문화 행사를 보라.

문제는 문화를 빙자한 이벤트성이 강하다 보니 이렇게 많은 행사가 열림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계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진정한 감동을 안고 가기보다는 헛헛한 가슴으로 행사장을 떠난다. 이런 행사에서 예술가들은 뒷전이고 행사를 기획하는 몇몇 전문가 집단과 이벤트 기획사들이 얼마 되지 않는 수익을 챙기는 형국이다.

그 많은 행사가 전국적으로 쏟아지건만 일부 스타급 예술가들을 제외하고는 예술가들은 여전히 먹고살기가 힘들다고 야단이다. 창작준비금 지원이나 예술인 파견 지원 등 창작 활동을 위한 다양한 지원 정책이 있다고 하지만 그림의 떡이 되기 일쑤다. 신청 절차와 행정 처리 방식이 복잡하고 까다로워 아예 포기하고 몸으로 때우는 아르바이트를 찾는 젊은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예술인 직거래 장터라는 것도 말뿐이지 큰 도움이 되진 않는다. 이런 열악한 상태에서 작가적 자긍심을 갖고 창작에 몰두하기는 어렵다. ‘문화’라는 이름을 빌려 공중에 물거품처럼 부서지는 돈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예술인 복지는 문화 이벤트 공급 과잉 속에서 벌어지는 이 불균형의 해소 방안을 찾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어떨까.

lotus@seoul.co.kr
2017-10-1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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