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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균미 칼럼] ‘여성 할당제’와 역차별

[김균미 칼럼] ‘여성 할당제’와 역차별

김균미 기자
입력 2017-10-25 22:44
업데이트 2017-10-2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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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균미 수석논설위원
김균미 수석논설위원
3년 전 미국 정부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열렸던 ‘일과 가정’을 주제로 한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여성 정치인과 기업인, 언론인이 참가했는데, 그때 같이 갔던 한국의 여성 기업인이 기업들이 여성 임원 숫자를 늘리도록 독려하는 비영리단체 서울지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하자 일본 여성 기업인들이 많이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 여성 기업인이 거론했던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가 어느새 창립 1주년을 맞아 며칠 전 포럼을 열었다. 일본의 공적연금기금 히로 미즈노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여성친화기업투자의 성과에 대해 주제 발표를 했다. 3년 전만 해도 기업 내 여성 임원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끝에서 앞뒤를 다퉜던 한국과 일본이었는데, 그새 일본은 성공 사례를 발표하나 싶어 의아했다.

들어 보니 우머노믹스를 내세운 일본 아베 정부는 130조엔(약 1500조원) 규모의 공적연금기금(GPIF)의 자산운영 전략을 재편해 환경과 여성,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를 함께 고려하는 ESG 투자를 현재 1조엔(약 10조원)까지 늘렸다. 단기 운용손실에 개의치 않고 여성친화 기업에 중장기로 투자해 최고경영자들이 여성 참여를 확대하도록 독려하고 있단다. 일본 정부는 2020년까지 여성 임원 비율을 30%까지 높이고자 2015년 여성활약추진법을 제정해 여성 관리직 자료의 공시를 의무화했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사회의 여성 임원 비율이 3%대에서 6.9%까지 올랐다고 한다.

작년 기준 한국 10대그룹 상장사의 여성 임원 비율은 2.4%. 한국에서도 여성 임원 비율을 30%로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첫 내각의 여성 장관 비율이 약속한 대로 30%를 넘겼고, 임기내 남녀 동수 의지를 밝히면서 이 같은 분위기에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다.

여성 할당제에 대한 요구는 경제계, 공공부문에 그치지 않는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과 여성계에서 일찌감치 터져 나오고 있다. 광역자치단체장과 기초지자체장, 지역구 시·군·구의원 후보를 남녀 동수 또는 여성 후보 30% 공천을 권고가 아니라 의무화해야 한다는 논의도 활발하다. 이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반대 논리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다. 30%를 채울 만큼 ‘능력 있는’ 여성 후보가 없다는 주장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상당 부분 착시 효과에 근거한다. 최근 공무원 등 국가고시 합격률과 대학입학률 등에서 여성이 남성에 앞섰다는 통계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이제는 남성이 불리해졌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2000년대 이후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많이 늘어났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기획재정부에서 첫 여성국장이 나온 게 아직도 뉴스가 되는 세상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현재 중앙행정기관 공무원 중 여성 비율은 49.0%로 절반에 육박하지만 4급 이상 관리직 여성 공무원은 11.3%, 고위공무원단 비율은 3.4%에 불과하다. 지방직 여성 공무원 비율은 35.5%이지만 5급 이상 여성 비율은 12.1%이다. 공공기관도 사정은 비슷하다. 여성 국회의원은 17%(51명)에 그치고, 광역자치단체장은 한 명도 없다. 반면 초중고 교사는 여성이 66.7%나 된다.

일본도 상황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다가 후토시 간사이대 교수는 국내에서도 올 1월 번역 출간된 저서 ‘남자문제의 시대’에서 이 같은 현상을 달리 분석해 눈길을 끈다. 그는 “여성이 남성보다 우위에 섰기 때문이 아니라 남성 지배 체제가 재편돼 가는 모습이며, 남성 간 경쟁에서 패하면서 그간 남성우위 사회에서 누려 온 혜택에서 배제되는 데 따른 상실감”이라고 진단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이는 여성 할당제와 역차별, 여성의 능력 논란은 1차적으로 여성들 스스로 잠재워야 한다. 동시에 여성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 분위기를 바꿔 나가는 법·제도의 개정이 뒤따라야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형을 잡을 수 있다.

수석논설위원 kmkim@seoul.co.kr
2017-10-2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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