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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저임금 선진국?/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열린세상] 저임금 선진국?/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입력 2017-11-19 17:40
업데이트 2017-11-20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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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 영국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이 경제학자들에게 전하는 충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언했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쉴러 교수는 “경제학에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경제문제를 삶을 살고 있는 구체적인 사람의 문제로 접근할 것을 촉구하는 말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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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한국 근로소득자의 평균임금은 2만 9125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터키 제외) 23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비해 1인당 GDP 대비 평균임금은 한국이 105.76%로 GDP 규모가 비슷한 호주(114.38%), 캐나다(115.49%), 스페인(114.97%)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소득 순위에 비해 평균임금 순위가 더 낮다는 의미이다. 이는 한국의 임금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OECD 34개국의 평균임금 상승률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5.39%인데 비해 한국은 3.87%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 노동자의 평균임금이 OECD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현실에 OECD 2위의 노동시간을 감안하면 임금 실상은 더욱 열악해진다. OECD의 ‘2017 고용동향’에 따르면 한국 취업자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으로 OECD 회원 35개국 평균 1764시간보다 305시간 길다. 이를 법정노동시간으로 나누면 한국 노동자는 OECD 평균보다 1.7개월 더 일한 셈이 된다. 노동시간을 감안하면 평균임금은 14%가량 감해져야 한다는 계산이다. 그러면 평균임금 순위는 더 떨어질 것이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폭에 대한 반발이 아직 진정되지 않고 있다. 저임금이 필수조건으로 간주됐던 수출 주도 성장을 반세기 넘게 추진해온 한국 경제에서 나타날 수 있는 타성적 반응일 수 있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 의해 고착된 측면이 있다. 1970·80년대에 정부는 임금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수출기업을 지원하는 것을 당연한 역할로 간주했다. 이후 특히 보수정권들에서는 임금 인상을 억제할 뿐 아니라 임금 자체를 낮추려는 정책수단까지 동원되었다. 포괄임금제가 그러했고 임금피크제가 그러했다. 지난 정권까지 최저임금위원회가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헌법 제32조 ①항) 하는 국가의 의무가 무색할 정도로 최저임금제를 운영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귀족 노조가 파업하는 나라는 없다”고 비난했지만 현직 대통령이 직접 나서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비난하는 나라는 더더욱 없다.

사용자 측에서도 임금 억제를 위해 끈질기게 노력해왔다. 통상임금 범위를 둘러싼 소송에서 매번 패해도 다시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비정규직은 당초 경영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고용 규모를 조절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실상은 저임금 노동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지불 능력이 취약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최저임금 인상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피자 나라’ 이탈리아에도 없는 피자체인점들이 한국처럼 많은 나라도 없다. 본사가 가하는 부당 압박마저 아르바이트생의 저임금으로 지탱하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

고용노동부가 ‘공짜 야근’의 원인으로 지목되어온 포괄임금제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새 가이드라인을 예고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밥이 민주주의인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면 ‘아니면 말고’식인 현행 체불임금대책도 처벌강화로 보완해야 할 것이고, 300만 명이 넘는 최저임금 사각지대도 시급히 해소해야 할 것이다. 압도적인 대다수 국민의 생존 열쇠인 임금 인상에 마냥 반대하는 자세도 청산되어야 할 적폐중 적폐이다. 죄짓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오히려 권력기관의 적폐보다 경제적 적폐를 척결하는 것이 훨씬 시급하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는 성장만이 아니라 공정분배도 있어야 한다. 임금 인상 요구는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일 뿐 아니라 기업의 혁신 노력을 촉진하여 ‘질 좋은’ 성장을 이끌어내는 자극제이기도 하다. 지속적인 임금 인상 없이 선진국이 된 나라는 하나도 없다. 임금 인상이 자연스러운 경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선진국의 조건이다. 선진국이 되어야 고임금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고임금이 되어야 선진국이 된다. 저임금 선진국은 없다.
2017-11-2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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