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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붕 아홉가족’… 지역과 더불어 살어리랏다

‘한지붕 아홉가족’… 지역과 더불어 살어리랏다

조희선 기자
조희선 기자
입력 2017-12-20 22:26
업데이트 2017-12-20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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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호 ‘연극인 맞춤형 공공임대주택’ 입주민들의 꿈

서울 성북구 삼선동2가 77. 오밀조밀한 주택들 사이에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특별한 집이 있다. 통유리 창을 통해 골목이 한눈에 들어오는 1층은 흡사 북카페 같다. 지하로 내려가니 거울로 한쪽 벽면을 채우고 조명까지 어엿하게 달린 연습실도 있다. 얼핏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문화 공간인가 싶지만 이곳은 엄연한 주택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입주민들. 주거 공간인 2~4층에 연극인 아홉 가족이 오순도순 살고 있다.
연극인 공공주택 입주민 중 배우 정대진(왼쪽부터), 김진이, 김경익 연출가, 김기태 작가가 지하 연습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연극인 공공주택 입주민 중 배우 정대진(왼쪽부터), 김진이, 김경익 연출가, 김기태 작가가 지하 연습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이곳은 주거난을 겪는 연극인들을 위해 서울시와 서울연극협회, SH공사가 손잡고 마련한 ‘연극인 맞춤형 공공임대주택’이다. 연극인 전용 공공주택이 생긴 건 처음이다. 연출가, 극작가, 배우, 평론가 등 연극인 가족 14명은 지난여름부터 차례차례 입주해 한 식구가 됐다. 최근 이곳을 찾아 ‘행복한 동거’를 하고 있는 김경익(49) 연출가, 김기태(37) 극작가, 정대진(41) 배우, 김진이(34) 배우를 만났다.
서울 성북구 삼선동2가에 자리잡은 연극인 공공주택 입주민들은 이 집이 주민들이 오다가다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지역 내 따뜻한 문화 사랑방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연극인 공공주택 전경.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서울 성북구 삼선동2가에 자리잡은 연극인 공공주택 입주민들은 이 집이 주민들이 오다가다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지역 내 따뜻한 문화 사랑방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연극인 공공주택 전경.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중 하나가 ‘더불어 살자’입니다. 내 아이가 행복하려면 내 아이의 친구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행복해지려고 주변을 불행하게 만드는 경쟁시스템이 아니라 다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문화적 향기가 이 동네에 퍼지기를 바라요.” 연극인 주택의 주민협의회 부회장을 맡은 김기태 극작가의 말이다.
지난 7일 연극인 공공주택에서 열린 개관식에서 입주민들은 소설가 정이현의 단편소설 ‘서랍 속의 집’을 각색한 낭독극과 멜로디언, 실로폰, 타악기 등을 사용한 음악 연주를 선보였다.  연극인 공공주택 주민협의회 제공
지난 7일 연극인 공공주택에서 열린 개관식에서 입주민들은 소설가 정이현의 단편소설 ‘서랍 속의 집’을 각색한 낭독극과 멜로디언, 실로폰, 타악기 등을 사용한 음악 연주를 선보였다.
연극인 공공주택 주민협의회 제공
지난 7일 연극인 공공주택에서 열린 개관식에서 입주민들은 소설가 정이현의 단편소설 ‘서랍 속의 집’을 각색한 낭독극과 멜로디언, 실로폰, 타악기 등을 사용한 음악 연주를 선보였다.  연극인 공공주택 주민협의회 제공
지난 7일 연극인 공공주택에서 열린 개관식에서 입주민들은 소설가 정이현의 단편소설 ‘서랍 속의 집’을 각색한 낭독극과 멜로디언, 실로폰, 타악기 등을 사용한 음악 연주를 선보였다.
연극인 공공주택 주민협의회 제공
그의 바람대로 지난 7일 이웃 주민까지 초청해 특별한 ‘집들이’를 했다. 정식 개관식이었던 이날 연극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장기를 한껏 발휘했다. 실로폰, 타악기 등을 사용한 연주회, 짤막한 인형극, 낭독극, 합창 등으로 “자유분방한 예술인들로 동네가 소란스러워지지 않을까” 우려하던 동네 주민의 마음을 녹였다.

“문화라는 것이 꼭 극장에 직접 가서 뭘 봐야 하는 게 아니라 삶의 형태가 바뀔 수 있도록 영향을 주는 것이야말로 문화거든요. 프랑스 파리 하면 센강과 샹송, 와인, 낭만을 떠올리듯이 서울에서도 이 동네만이 지닌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이 주민들과 더불어 사는 작은 변화를 통해 이 지역만의 색다른 색깔이 묻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김경익)

입주민들은 ‘행복하게 더불어 사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늘 고민한다. 자체적으로 주민협의회 대표와 부대표, 총무 등을 선출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머리를 맞댄 덕에 ‘오프 대학로’로 불릴 정도로 거주 연극인이 즐비한 삼선동에서 이곳은 연극인과 지역주민 간 교류의 장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지하 연습실과 1층 커뮤니티룸은 연극인들을 위한 자유로운 창작공간이자 지역주민에겐 문화센터나 다름없다. 특히 내년 봄부터 1층 커뮤니티룸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수업, 희곡읽기 모임, 낭독공연 발표, 연기 훈련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연습실은 향후 일반인들에게도 특정 시간대에 한해 개방할 예정이다.

“저나 남편이나 모두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보니 사진 찍히거나 찍는 것에 관심이 많거든요.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일반인들에게 소소하지만 저희의 노하우를 알려 주면서 소통하고 싶어요. 또 내년이면 아이가 태어나는데 이곳을 동네 아이들이 함께 크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김진이)

“사실 평생 살면서 연극을 한 번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 많잖아요. 요즘 저는 연극인들끼리만 연극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들더라고요. 단순히 공연만 하고 말 것이 아니라 사회와 만나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이곳이 주민들에게 극장을 벗어난 공간에서의 또 다른 극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정대진)

다만 아쉬운 점은 짧은 임대 기한(2년)이다. 소득 및 자산 등의 무주택 요건을 유지하면 재계약을 통해 최장 6년간 거주할 수 있지만 집세 비싼 대학로 인근 동네에서 이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김 작가는 “이 사업의 취지가 연극인들의 주거가 안정돼야 좀더 나은 창작 활동을 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주민들과 문화 활동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인데 벌써부터 2년 뒤를 걱정하고 있다”면서 “더 많은 연극인이 혜택을 받아야 한다면 기간을 제한하기보다 공공주택을 늘리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2017-12-21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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