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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파사현정, 그 시작은 올바른 민주주의다/이두걸 금융부 차장

[데스크 시각] 파사현정, 그 시작은 올바른 민주주의다/이두걸 금융부 차장

이두걸 기자
이두걸 기자
입력 2017-12-21 17:52
업데이트 2017-12-22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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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외가를 통틀어 가장 큰 어른이던 외숙부는 1970년 초부터 10여년 ‘영어’(囹圄)의 처지였다. 성직자로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면서 투옥과 가택연금 등이 이어졌다. 전두환 정권에서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해외에 머물렀다. 경찰은 우리 집까지 들이닥쳤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면 다 뒤집힌 서랍장과 장롱 등을 침묵 속에서 정리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종종 발견하곤 했다. 코흘리개 초등학생이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영애’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생득적 거부감이 쌓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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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걸 금융부 차장
이두걸 금융부 차장
지난 3월 이정미 당시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선언했을 때 뒷맛이 씁쓸했다. 최고 통수권자로서의 품위를 찾아볼 수 없던 그의 모습이 곧 우리 사회의 민낯처럼 느껴진 까닭이다.

하지만 서초동 검찰청사 밖과 서울광장에서 곧잘 마주치던 ‘태극기 부대’는 거짓뉴스를 반복했다. 여야 합의로 출범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물론 국가기관인 검찰이나 법원을 향해 ‘빨갱이’라고 부르짖었다.

언론사 안에도 직간접적으로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던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상당수는 ‘침묵’으로 동조했다. 기계적 중립을 내세우며 의도적인 왜곡과 회피를 강요했다. 국가와 민족을 운운하면서도 박 전 대통령의 부당한 권력행사와 사익추구를 부끄럼 없이 옹호했다. 그때마다 오장육부가 문드러지는 듯했다.

5월 10일 이후 세상은 바뀌었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하고 ‘좌파 척결’이라는 서슬 퍼런 용어도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민주주의와 상식의 결핍을 느낀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 방중 행사를 수행하던 사진기자 두 명이 중국 공안 출신 경비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근접 비표를 발부받은 기자들은 문 대통령의 동선을 따라가다가 제지당하고, 이후 밖으로 끌려나와 십수 명에게 발길질을 포함한 ‘집단 린치’를 당했다.

이를 두고 ‘취재 열의’ 운운하며 한국 언론에 책임을 돌린다. 청와대 풀 기자는 대통령의 동선을 뒤따른다는 ‘팩트’는 이들에게 중요치 않은 듯하다. ‘기자들이 프레스라인을 먼저 넘었다’는 잡설은 대응할 가치도 못 느낀다.

‘혼밥’이나 ‘홀대’ 운운하며 방중의 성과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린 보수 언론의 논조를 옹호할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다. 하지만 이를 빌미로 ‘기레기는 맞아도 싸’라며 선동하는 상황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잘못한 이들에겐 몽둥이가 답’이라고 제 자식에게도 가르칠까. 일부 인권 후진국의 태형을 도입하자는 뜻일까.

‘문빠’의 한 인사는 “비판이나 견제라는 언론의 기능은 촌스럽다”라고 주장한다. ‘문비어천가를 부르라’는 요구로 들린다. ‘감시 없는 권력은 부패한다’는 진리도 이들의 ‘맹목적 사랑’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사고 구조와 얼마나 다를까. 상식과 민주주의 대신 대통령 개인을 절대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면에서 문빠와 박사모는 놀랍도록 닮았다.

교수들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을 꼽았다. ‘사악한 것을 부순다’는 ‘파사’보다 ‘사고방식을 바르게 한다’는 ‘현정’에 더 눈길이 간다. ‘촛불의 정신’은 탄핵 이후의 실질적 민주화를 기획하고 정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을 다시 떠올릴 때다.

douzirl@seoul.co.kr
2017-12-2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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