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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차별 속에서…세상 바꾼 열혈 여기자

편견·차별 속에서…세상 바꾼 열혈 여기자

조희선 기자
조희선 기자
입력 2018-01-19 22:28
업데이트 2018-01-19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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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넬리 블라이의 생생한 취재기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10일·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72일/넬리 블라이 지음/오수원·김정민 옮김/모던아카이브/각 208쪽·304쪽/각 1만 3000원·1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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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기자가 드물었던 19세기 말 남다른 취재 열정으로 탐사 보도의 새 장을 연 넬리 블라이의 1895년쯤 모습. 모던아카이브 제공
여자 기자가 드물었던 19세기 말 남다른 취재 열정으로 탐사 보도의 새 장을 연 넬리 블라이의 1895년쯤 모습.
모던아카이브 제공
“중국을 비롯해 역사가 오래된 일부 국가에서는 여자아이를 죽이거나 노예로 판다. 쓸모가 없어서다. 우리도 언젠가 그럴 날이 올지 누가 알겠는가?”

1885년 1월 미국 일간지 피츠버그 디스패치에 문제의 한 칼럼이 실렸다. ‘여자아이가 무슨 쓸모가 있나’라는 제목의 이 글에는 여자아이들은 오직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데 집중해야 하기에 직장에 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성차별적인 발언들이 담겨 있다. 이에 분노한 익명의 독자가 신문사에 반박문을 보내왔다. 신문에 공지문을 실어 이 독자를 찾아낸 조지 매든 편집장은 그녀에게 정식으로 칼럼을 써보라고 제안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시대에 할 말이 많았던 그녀는 보수적인 칼럼니스트의 글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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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이가 72일 만에 세계일주를 완주한 다음날인 1890년 1월 26일 뉴욕월드 1면에 실린 기사. “그녀가 모든 기록을 깼다”고 쓰여 있다. 모던아카이브 제공
블라이가 72일 만에 세계일주를 완주한 다음날인 1890년 1월 26일 뉴욕월드 1면에 실린 기사. “그녀가 모든 기록을 깼다”고 쓰여 있다.
모던아카이브 제공
“여성도 얼마든지 남성만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똑똑하고 젊은 남성들을 모집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똑똑하고 젊은 여성들을 일자리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들을 수렁에서 건지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도록 밀어줘라. 그 보상은 이들의 성공과 감사를 통해 충분히, 아니 넘치도록 받게 될 것이다.”

똘망똘망한 눈망울만큼이나 총기 넘치는 스무 살의 당찬 여성은 이로부터 불과 2년 뒤 세상을 들썩이게 한 특종 취재로 미국에 이름을 떨친다. ‘넬리 블라이’라는 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엘리자베스 제인 코크런(1864~192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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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10일’과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72일’은 비판적인 사회의식과 과감한 행동력으로 유명했던 열혈 기자 블라이의 생생한 취재기다. 각각 10일간의 정신병원 잠입 취재기와 72일간의 세계 일주 모험기가 담겼다. 세계 일주기는 2009년 ‘72일간의 세계 일주’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출간됐다 절판됐고, 정신병원 취재기는 처음 나왔다.

사회의 부패와 비리를 폭로하는 탐사 보도에 관심이 많았던 블라이는 1887년 환자 학대로 악명이 높았던 뉴욕 블랙웰스섬의 한 정신병원에 잠입한다. 환자 행세를 하며 우여곡절 끝에 입원한 이 병원은 듣던 대로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쓰레기 음식을 내놓는가 하면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로 목욕을 해야 했다. 간호사들은 우는 환자의 얼굴과 머리를 사정없이 때리고 목을 조를 만큼 잔인하고 포악했다. 병원 내부 실태를 고발한 블라이의 기사는 그해 10월 뉴욕월드 1면을 장식했다. 사회적 반향 역시 컸다. 당시 뉴욕시 당국은 정신질환자를 위한 복지 예산을 연간 100만 달러 증액했다. 미약한 존재로만 여겨졌던 여성이 거대한 세상을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정의 실현을 위해 세상에 거침없이 뛰어들었던 블라이의 도전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이 1873년 발표한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보다 더 빨리 세계 일주를 끝내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1889년 뉴욕월드 경영진의 만류에도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이집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홍콩, 일본 등 세계 일주에 나선 그녀는 72일 6시간 11분 14초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완주에 성공한다. 세상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을 기꺼이 가능한 것으로 바꾼 블라이의 도전 정신은 지금을 사는 여성들에게도 영감을 준다. 세상의 편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그녀가 남긴 말은 두고두고 새길 만하다.

“나는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제대로 힘을 쏟으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원한다면 할 수 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2018-01-2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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