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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단원 몰래 차명계좌 만들어 쓴 연희단…정부지원금 빼돌렸나

[단독] 단원 몰래 차명계좌 만들어 쓴 연희단…정부지원금 빼돌렸나

안동환 기자
안동환 기자
입력 2018-03-08 22:40
업데이트 2018-03-08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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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단거리패 前단원 “밀양연극촌, 나 몰래 통장 만들어 거래”

2009년 주민등록증·도장 수거
탈퇴 후 하용부 찾아와 차명 실토
월급 입금 없이 2198만원 입출금
금융실명제 위반·탈루 가능성도
남모씨가 경남 밀양연극촌 인근 부북농협지점에서 2009년 2월 24일 개설된 자신 명의의 계좌 존재를 확인하고 지난 7일 발급받은 예금거래내역서. 남씨도 모르게 연희단거리패에서 만든 이 계좌에는 같은 해 4월 1일 2198만 8000원이 동국대 산학에서 입금된 뒤 같은 달 7일 극단의 다른 단원 계좌로 전액이 이체됐다.  남씨 제공
남모씨가 경남 밀양연극촌 인근 부북농협지점에서 2009년 2월 24일 개설된 자신 명의의 계좌 존재를 확인하고 지난 7일 발급받은 예금거래내역서. 남씨도 모르게 연희단거리패에서 만든 이 계좌에는 같은 해 4월 1일 2198만 8000원이 동국대 산학에서 입금된 뒤 같은 달 7일 극단의 다른 단원 계좌로 전액이 이체됐다.
남씨 제공
“연희단거리패가 내 명의의 계좌와 통장을 개설한 사실을 최근 알았어요.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입출금 내역을 확인해 보니 큰돈이 들어왔다가 나도 모르게 빠져나갔더군요.”

이윤택 연출가와 극단 연희단거리패가 신입 단원 명의로 차명계좌를 만들어 사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연극계와 법조계는 8일 이씨의 성폭력 혐의를 밝히는 것과 별도로 정부와 지자체가 국민 세금으로 그에게 준 막대한 지원금에 대한 조사도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연희단거리패에 입단했다가 탈퇴한 남모씨는 지난 7일 경남 밀양 부북농협지점에 자신 명의로 개설된 계좌와 입출금 내역을 확인했다. 계좌 개설일은 그가 밀양연극촌에 머물던 시기인 2009년 2월 24일이다.

●미투 운동 보고 예전 일 떠올라

그는 “연희단거리패 시절의 기억을 까마득하게 잊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 지난달 이씨의 성폭력 뉴스를 보면서 예전 일이 불쑥 떠올랐다”고 말했다.

남씨는 2008년 말 연희단거리패의 단원 모집 공고를 보고 이씨가 운영하는 ‘우리극연구소’에 입소했다. 그곳에서 연기 워크숍 과정을 마친 동기 20여명 중 절반 정도가 밀양연극촌으로 내려갔다. 정식 단원이 되려면 우리극연구소 기초 과정을 마친 후 밀양 부북면 가산리에 조성된 연극촌에서 합숙 교육을 거쳐야 한다.

남씨는 고참 단원들이 신입 단원들을 밀양 시내로 데려가 각자 도장을 만들게 했고, 김소희 대표가 신입 단원들의 주민등록증과 도장을 수거해 보관했다고 말했다. 당시 신입 단원들에게는 숙식 제공과 함께 매달 20만원의 월급 지급이 처우 조건으로 제시됐다.

남씨가 계좌 얘기를 처음 들은 건 건강 악화로 서울에서 통원 치료를 받던 2009년 4월이었다. 그는 같은 달 서울 게릴라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코뿔소’에 단역 배우로 출연한 뒤 극단을 탈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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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부 밀양연극촌장. 연합뉴스
하용부 밀양연극촌장.
연합뉴스
●하용부 돈 찾게 도와달라 찾아와

“하용부 밀양연극촌장이 나를 찾아 서울에 왔어요.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든 적도 없는 내게 ‘통장이 있는데 거기서 돈을 빼야 하니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촌장이 ‘당신 거기에 든 돈을 훔쳐 도망갔으면 적이 될 뻔했다’고 농담한 것도 기억나요. 촌장이 건넨 서류에 도장을 찍고 헤어진 게 전부인데 그 기억이 갑자기 떠올라 계좌를 확인하게 됐죠.”

남씨가 발급받은 ‘예금거래내역서’에는 단 1건의 입출금 기록만 있었다. 2009년 4월 1일 이씨가 교수로 있던 ‘동국대 산학’으로부터 2198만 8000원이 입금됐고, 같은 달 7일 연희단거리패의 다른 단원 계좌로 전액 출금됐다. 월급 20만원은 이 계좌에 입금되지 않았다.

대학로에서 극단을 운영 중인 대표 A씨는 “정부 등 외부 지원금 등은 반드시 극단 명의의 계좌로 입출금해야 회계 처리가 된다”며 “10년 전이라고 해도 단원도 모르는 계좌들을 만들어 극단 자금을 돌리는 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A씨는 “예를 들어 부산시가 3억원을 지원했다면 거기에는 배우들 출연료와 공연 제작비가 뭉뚱그려 포함된다”며 “만약 각 단원 계좌로 개런티 300만원을 지급한다면 그 기록을 남긴 후 다시 200만원은 빼서 다른 용도로 돈을 쓰기 위한 내부 거래이거나 사례비 항목을 부풀려 제작비를 맞추는 편법을 썼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극단 대표 B씨는 “정부나 지자체 지원금의 경우 일부 남겨서 딴 데 써도 그건 추적하지 않는다”며 “과거 일부 제작자들이 쓰던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판사 출신인 김관기 변호사는 “정부 지원금을 빼돌리는 전형적인 허위 증빙 수법으로 보인다. 당사자들도 모르게 차명 계좌를 쓴 건 금융실명제법 위반으로 판단되고, 이 경우 원천징수도 되지 않아 세금을 포탈했을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이윤택 “돈관리 안해… 월급통장 용도”

이윤택 연출가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내가 직접 돈을 관리하는 게 힘들어 당시 동국대를 통해 경상남도로부터 창작 뮤지컬 ‘이순신’ 제작비를 지원받았고 이미 감사도 다 받았다”며 “극단에서 월급을 주기 위해 단원들의 통장을 관리했지만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2018-03-09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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