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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의 절정… 경치를 잠시 빌리다

고궁의 절정… 경치를 잠시 빌리다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18-04-04 23:22
업데이트 2018-04-05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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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시선으로 보는 특별한 ‘고궁의 봄’

새봄이 되면 고궁마다 봄맞이 행사를 엽니다. 행사는 대개 금지된 영역의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창덕궁 낙선재 후원의 쪽문을 열고, 경복궁 경회루로 오르는 계단의 문도 활짝 엽니다. 이런 행사들의 핵심은 왕의 눈높이에서 궁궐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바야흐로 고궁들의 화양연화가 시작됐습니다. 다 돌아볼 수는 없더라도, 한 곳쯤은 찾아 물오른 봄 풍경을 만끽하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한정당 담장에서 까치발을 하고 본 낙선재 후원 풍경. 매화와 수양 벚꽃이 흐드러진 고궁의 봄 풍경과 고풍스러운 전각들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특급 전망 포인트다.
한정당 담장에서 까치발을 하고 본 낙선재 후원 풍경. 매화와 수양 벚꽃이 흐드러진 고궁의 봄 풍경과 고풍스러운 전각들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특급 전망 포인트다.
낙선재의 포도 문양 손잡이.
낙선재의 포도 문양 손잡이.
화계 위 쪽문에서 본 낙선재 후원.
화계 위 쪽문에서 본 낙선재 후원.
낙선재 정문인 장락문.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다. 멀리 뒤의 정자는 상량정이다.
낙선재 정문인 장락문.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다. 멀리 뒤의 정자는 상량정이다.
●계단식 화단·꽃담… 창덕궁 낙선재의 백미 ‘뒤란’

낙선재는 조선의 24대 임금 헌종이 1847년 서재 겸 휴식 공간으로 지은 건물이다. 후궁인 경빈 김씨를 위해 지은 석복헌과 순조의 정비인 순원왕후가 머물던 수강재도 딸려 있다. 석복헌은 단청이 없다. 소박하고 단아하다. 호리병, 포도 등 다산을 기원하는 문양도 건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맘때 낙선재 구역의 백미는 뒤란이다. 매화가 흐드러진 화계(계단식 화단)와 각종 무늬로 치장한 꽃담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뒤란에서 눈여겨볼 것은 괴석이다. 화강암 받침대에 특이하게 생긴 돌을 받쳐 놓았다. 받침대 중 하나엔 소영주(小瀛洲)라고 씌어 있다. 영주는 신선 세계다. 그러니 받침대의 주장은 이 공간이 곧 선경이라는 것일 터다.

뒤란의 위는 야트막한 산자락이다. 낙선재 구역에 딸린 전용 후원이다. 평소에는 출입이 금지된 영역이다. 바로 이곳에 발을 딛는 것이 특별 관람의 핵심이다. 취운정에서 작은 쪽문을 오르면 곧 한정당이다. 건물 주변엔 담장이 둘러쳐 있다. 이 담장을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 반드시 까치발을 하고 봐야 한다. 그래야 담장 너머로 펼쳐지는 완벽한 진경산수화를 눈에 담을 수 있다.

●인왕·백악·낙산·남산 한눈에 볼 수 있는 ‘상량정’

작은 쪽문을 하나 더 지나면 제법 너른 터에 육각형 정자와 긴 창고형 건물이 나온다. 정자는 ‘상량정’이라 적힌 편액을 달고 있다. 한데 편액이 매우 작다. 어른이 배냇저고리를 입은 것처럼 어색하다. 글씨를 왼쪽부터 쓴 것도 그렇다. 상량정의 옛 이름은 평원루다. 상량정 위로 오르면 인왕과 백악, 낙산, 남산 등 한양을 에워싼 4개의 산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은 출입이 금지돼 있어 이 모습을 볼 수 없다. 아쉽기 짝이 없다. 기껏해야 열댓 개 정도의 계단만 오르면 천하의 절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데 말이다. 상량정 옆의 묵직한 건물은 예전 장서각이다. 여기서 무수히 많은 한글소설이 발견됐다고 한다. 이를 따로 ‘낙선재본’이라 부른다.

상량정 옆 담장에 새겨진 무늬가 인상적이다. 부(富) 자와 수(壽) 자를 형상화한 문양이 반복적으로 이어진다. 담장을 지나는 문은 만월문이다. 보름달처럼 둥근 형태다. 문 자체도 예쁘지만, 안에 담기는 풍경은 더 예쁘다. 이제 막 꽃잎을 연 돌배나무와 창덕궁 전각의 기와지붕, 그리고 멀리 백악의 봉긋한 봉우리가 함께 담긴다.
창덕궁 인정전 천장에 매달린 전등. 전환기 궁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창덕궁 인정전 천장에 매달린 전등. 전환기 궁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인정전 유리창의 섬세한 문양들.
인정전 유리창의 섬세한 문양들.
인정전 어좌와 천장의 봉황 조각을 한 화면에 담았다. 임금 앞에 부복한 신하의 자세라야 이 같은 압도적인 공간감을 만끽할 수 있다.
인정전 어좌와 천장의 봉황 조각을 한 화면에 담았다. 임금 앞에 부복한 신하의 자세라야 이 같은 압도적인 공간감을 만끽할 수 있다.
왕들이 손때가 묻어 있는 어좌 앞 조형물.
왕들이 손때가 묻어 있는 어좌 앞 조형물.
●왕이 정사 살피던 ‘인정전’ 내부 관람도 감동

인정전(국보 225호) 내부 관람도 낙선재 못지않은 감동을 준다. 인정전은 왕이 정사를 살피던 공간이다. 20분 남짓 왕이 된 기분을 낼 수 있다. 인정전에 들면 여러 시각에서 살펴보길 권한다. 왕뿐 아니라 신하, 내시 등 자리를 바꿀 때마다 사뭇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인정전은 밖에서 보면 단층이지만 안에서 보면 중층 구조다. 그 압도적인 공간감은 신하의 자리에 서서 볼 때 최대치를 이룬다. 사실 가장 재미없는 것은 왕의 시선이다. 왕이 앉은 자리가 곧 풍경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어좌와 일월오봉병,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금강송 기둥, 천장의 화려한 봉황 조각 등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은 외려 말석의 신하 자리다. 전등, 유리창, 커튼 등 근대적 요소가 가미된 전환기의 궁궐 모습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게 좋겠다.

궐내각사 특별 관람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궐내각사는 궁궐 안에서 활동하는 관리들의 활동 공간을 복원한 곳이다. 상시 개방되지만 해설사의 설명이 곁들여지면 감동이 한결 깊어진다.

●풍경을 액자처럼 보는 ‘낙양각’… 경복궁 경회루의 백미

경복궁에선 경회루 개방 행사가 준비됐다. 경회루는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지어 올린 누각이다. 경회루 2층은 바닥의 높이가 각각 다르다. 중앙부가 가장 높고, 가운데 공간이 한 뼘 남짓 낮다. 바깥 공간 역시 또 한 뼘 정도 낮다. 높이가 다른 경계 구역엔 분합문을 달았다. 문을 내리면 폐쇄된 공간이 되고 열면 터진 마루가 된다. 참고할 것 하나. ‘인증샷’ 찍은 뒤 휴대전화를 잘 챙겨야 한다.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마루 틈으로 소지품이 빠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빠진 소지품은 ‘이번 생’에선 찾을 방도가 없다. 아주 먼 훗날 경회루를 중수할 때나 가능하다.

낙양각은 경회루의 백미로 꼽힌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독특한 문양을 새겨 바깥 풍경이 액자처럼 보이게 했다. 옛사람들은 한옥의 창을 단순히 창으로만 보지 않았다. 풍경을 담는 액자로 봤다. 이처럼 밖의 풍경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차경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경치를 빌린다는 뜻이다. 소유하지 않고 잠시 빌려서 즐길 뿐이다. 이 덕에 붓질 한 번 하지 않고도 계절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 수백 장의 풍경화를 내걸 수 있다.

낙양각은 네 방향 모두 절경을 품고 있다. 특히 남쪽 방향이 인상적이다. 근정전과 수정전 등의 전각들이 낙양각을 채운다. 수정전 옆은 잔디밭이다. 잔디밭은 ‘궁궐의 눈물’과 같은 것이다. 오래전 빼곡했던 궐내각사가 사라진 흔적이기 때문이다.
성정각 담장에 핀 홍매화. 무너지고 다시 세워진 주변 건물과 달리 한자리에서 400년을 살아 냈다.
성정각 담장에 핀 홍매화. 무너지고 다시 세워진 주변 건물과 달리 한자리에서 400년을 살아 냈다.
●덕수궁 내 유일하게 단청 없는 건물 ‘석어당’

덕수궁에선 석어당 개방이 봄 행사의 백미다. 석어당은 덕수궁 안에서 유일하게 단청이 칠해져 있지 않은 건물이다. 유일한 2층 목조건물이기도 하다. 원래는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이 살던 집이었는데 임진왜란 뒤 선조가 15년을 지내면서 덕수궁의 모태가 됐다. 병에 걸린 선조를 위해 허준이 분주히 오가고, 선조가 승하하고, 대청마루에 앉은 인목대비가 뜨락에 광해군을 꿇린 채 호되게 꾸짖었던 곳이 바로 여기다.

석어당 2층에서 굽어보는 살구꽃 핀 풍경이 아름답다. 문을 열면 사방의 풍경이 쏟아져 들어온다. 곧바로 여성 참가자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고, 줄곧 무게만 잡던 중년 남성들의 입가에도 배시시 미소가 걸린다.

글 사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창덕궁 낙선재 특별 개방은 오는 28일까지 매주 목~토요일 오전 10시 30분에 진행된다. 창덕궁누리집(www.cdg.go.kr)에서 예약해야 한다. 다만 거의 모든 날짜가 매진이어서 아쉽다. 낙선재는 화계 위 공간만 진입이 제한된다. 후원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낙선재 구역의 화양연화가 이제 막 시작된 만큼 이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게 좋겠다. 인정전 내부 관람은 10월까지 매주 목~토요일 1일 4회( 오전 10시 30분, 11시, 오후 2시, 2시 30분) 운영된다. 당일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신청받는다. 1회 입장 인원은 30명이다. 우천 시엔 취소된다. 궐내각사는 상시 볼 수 있지만 특별 관람 기간엔 전문 해설사가 동행한다. 10월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2시에 운영된다. 역시 예약해야 한다. 덕수궁 석어당, 함녕전 개방은 5일까지다. 밖에서는 언제든 둘러볼 수 있다. 석어당과 ‘한 세트’인 살구꽃은 지난달 29일쯤 피기 시작했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더니 벌써 절정을 지나 낙화하고 있다.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 내부 관람은 화·토요일 오전 9시와 오후 4시에 각각 진행된다. 덕수궁관리소 누리집(www.deoksugung.go.kr)에서 예약해야 한다. 현재 진품으로 전시 중인 일월오봉병은 이달 중 교체된다. 서둘러 봐 두는 게 좋겠다.

경회루(국보 224호) 특별 관람은 10월 말까지 주중 3회(오전 10시, 오후 2시, 4시), 주말 4회(오전 11시 추가) 진행된다. 소요 시간은 30~40분이다. 회당 최대 관람 인원은 70명(`내국인 60명, 외국인 10명)이다. 경복궁 누리집(www.royalpalace.go.kr)에서 예약제로 운영된다. 1인당 최대 4명까지 예약할 수 있다.
2018-04-0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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