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나’는 속이 타고 끓는다. 봄이 되니 더욱 그렇다. 점순이를 향한 그리움은 더 커진다. ‘봄이 되면 온갖 초목이 물이 오르고 싹이 트고 한다’는 작품 속 표현이 뒷받침한다. 그러나 환경은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이런 ‘나’의 심정을 충분히 반영해 제목을 그저 ‘봄’이라 하지 않았다. 기다리다 그립고 간절해진 봄날 사연을 ‘봄’이라고 하기엔 밋밋했나 보다. ‘봄’이 왔다고 다그치듯 ‘봄봄’이라고 했다. 더하여 현실을 ‘보라’는 뜻도 담지 않았을까.
‘삶’이 ‘살다’의 명사형이듯 ‘봄’은 ‘보다’의 명사형 같다. ‘봄’은 세종대왕 때도 ‘봄’이었는데, ‘봄’이 ‘보다’에서 온 것이 너무 당연해서 다른 흔적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불’의 옛 형태인 ‘블’과 ‘오다’의 명사형인 ‘옴’이 합쳐져 ‘봄’이 됐다는 얘기도 있다. 불이 따듯함을 가지고 있으니 그럴듯해 보인다.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봄놀다’는 ‘뛰놀다’의 옛말이다. ‘봄’에 ‘뛰고 움직이다’라는 의미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봄’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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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5 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