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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에 털 나고 이마에 뿔 돋아” 파격의 시조시인 오현 스님 입적

“온 몸에 털 나고 이마에 뿔 돋아” 파격의 시조시인 오현 스님 입적

안동환 기자
안동환 기자
입력 2018-05-27 22:24
업데이트 2018-05-27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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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 벗어난 법문·선시 잘 지어…文대통령 “슬쩍슬쩍 용돈 줘”

“천방지축(天方地軸) 기고만장(氣高萬丈)/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다보니/온 몸에 털이 나고/이마에 뿔이 돋는구나/억!” 조계종 원로의원이자 한국 불교의 선맥이 태동한 설악산 자락의 신흥사 조실인 설악무산대종사 오현 스님이 지난 26일 신흥사에서 신비로운 열반송을 남기고 입적했다. 세수 87세. 승납 6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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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 스님
오현 스님
오현 스님은 193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1939년 출가했다. 무산대종사인 스님의 속명이자 필명이 조오현이다. 스님이 입적 전 남긴 마지막 언어는 바로 시(詩)였다. 평소 틀에 갇히지 않는 파격적인 법문과 선시(禪詩)를 잘 짓던 스님의 모습이 열반송에서도 오묘하게 전해진다.

1968년 등단한 오현 스님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시조시인이자 한글 선시의 개척자로 꼽힌다. 시조집 ‘심우도’, ‘아득한 성자’, ‘적멸을 위하여’ 등을 펴냈고, 가람시조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현대시조문학상, 고산문학대상 등을 수상하며 해외에도 작품이 알려졌다.

불교신문 주필을 지낸 스님은 1998년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설립한 데 이어 만해대상과 만해축전을 시작했다. 종단 최고 법계인 대종사를 품수하며 최고 원로로 후학을 지도해 왔다.

스님은 2012년 신흥사 동안거(冬安居) 해제 법회에서 “나는 여든까지 살았지만 아직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잘 모른다”며 “그것을 알기 위해 참선이라는 이름으로 수행하고 안거하는 것 아니냐. 콧구멍만 한 방에 들어앉아서 구멍으로 들어오는 밥을 먹으며 3개월 동안 징역살이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오현 스님과의 인연을 거론하며 “스님의 입적 소식에 아뿔싸! 탄식이 절로 나왔다”고 추모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이제야 털어놓자면 스님께선 서울 나들이 때 저를 한번씩 불러 막걸리잔을 건네주시기도 하고 시자 몰래 슬쩍슬쩍 주머니에 용돈을 찔러주시기도 했다. 물론 묵직한 ‘화두’도 하나씩 주셨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언제 청와대 구경도 시켜드리고, 이제는 제가 막걸리도 드리고 용돈도 한번 드려야지 했는데 그럴 수가 없게 됐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오현 스님의 빈소는 신흥사이고, 장례는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엄수된다. 영결식과 다비식은 오는 30일 오전 10시 신흥사에서 열릴 예정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2018-05-28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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