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아라가야 왕성 실체 드러낼 8.5m 높이 토성 확인

아라가야 왕성 실체 드러낼 8.5m 높이 토성 확인

강경민 기자
입력 2018-06-07 15:16
업데이트 2018-06-07 15:16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함안 가야읍 가야리 발굴조사건물터·암반 구덩이·5∼6세기 토기도 발견

이미지 확대
아라가야 왕성 실체 드러낼 8.5m 높이 토성 확인
아라가야 왕성 실체 드러낼 8.5m 높이 토성 확인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그간 문헌과 구전을 통해 아라가야 왕궁터로 지목된 경남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289번지 일원에서 지난달 시작한 발굴조사를 통해 5∼6세기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토성과 목책(木柵·울타리) 시설을 찾아냈다고 7일 밝혔다. 이번에 확인한 토성 유적은 가야 권역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규모가 크고 축조기법이 정교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토성 높이는 8.5m이고, 상부 폭은 20∼40m에 이른다. 조사 구역에서 드러난 성 길이는 약 40m다. 사진은 목책 건물터. 2018.6.7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연합뉴스
대가야·금관가야와 함께 가야 중심세력을 형성했고 신라·백제·왜와 교류했다는 고대 국가인 아라가야(阿羅加耶) 왕성의 실체를 드러낼 유적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아라가야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에 ‘아나가야’(阿那加耶), ‘아야가야’(阿耶伽耶), ‘안라’(安羅)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등장하나 자체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사료 연구로는 한계가 뚜렷한 상황에서 아라가야의 토목기술과 방어체계, 생활문화를 구명할 획기적 고고학 자료가 나온 것이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그간 문헌과 구전을 통해 아라가야 왕궁터로 지목된 경남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289번지 일원에서 진행한 발굴조사 성과를 7일 공개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5∼6세기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토성과 목책(木柵·울타리) 시설이 나왔다.

조사단은 이번에 확인한 토성 유적에 대해 가야 권역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규모가 크고 축조기법이 정교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강조했다.

토성 높이는 8.5m이고, 상부 폭은 20∼40m에 이른다. 토성은 구릉을 따라 축조해 최대 높이는 10m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 구역에서 드러난 토성 길이는 약 40m다.

흙으로 성벽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나무기둥을 설치하고, 차곡차곡 흙을 쌓아 올리는 판축기법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강동석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동시기 가야 토성으로는 높이가 약 4m인 합천 성산토성, 양산 순지리토성과 높이 2.8m인 김해 봉황토성이 있다”며 “다른 가야 토성보다는 확실히 크다”고 강조했다.

백제 왕성으로 확실시되는 풍납토성 높이가 13.3m이고, 몽촌토성 높이가 6m라는 점을 고려하면 가야리 토성도 왕성급 유적이라는 것이 연구소 설명이다.

강 연구관은 “성벽을 단단히 쌓기 위해 나뭇가지나 잎을 올리고 태운 목탄층을 조성했다”며 “국내 토성에서 나뭇가지로 층을 만드는 부엽층은 확인된 바가 있으나, 목탄층이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토성 성벽 위에서는 방어시설인 목책으로 짐작되는 2열 나무기둥과 함께 건물터, 구덩이 유구(遺構·건물의 자취)가 발견됐다.

목책 나무기둥 구멍은 직경이 약 30㎝이며, 나무기둥 사이 간격은 1m다. 좌우 나무기둥 열의 폭은 2m다.

강동석 연구관은 건물터에 대해 “바닥이 지면보다 높은 고상(高床)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기둥 구멍 배열이 불규칙적이어서 정확한 건물 형태와 규모를 추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성내에서 확인된 유적 가운데 이목을 끄는 것은 기반암을 인위적으로 파서 만든 가로 5.2m, 세로 3.4m, 높이 0.5m 구덩이다.

구덩이 내부에는 아궁이 위에 솥을 거는 부뚜막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있다. 또 무덤을 비롯한 의례 공간에서 출토되는 통형기대(筒形器臺·원통모양 그릇받침)와 손잡이가 달린 주발, 붉은색 연질토기가 나왔다.

이 구덩이에 대해 연구소는 “가야 문화권에서는 한 번도 발견되지 않은 유적으로, 특수한 목적으로 이용한 듯하나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며 “구덩이에서 나온 통형기대는 인근 말이산 고분에서 나온 유물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아라가야가 봉분을 높게 만든 무덤인 고총(高塚)을 조성하고 대외적으로 활발하게 교류한 전성기인 5세기 중반∼6세기 중반에 제작한 토기 조각들이 나왔다.

조사 지역은 1587년 편찬한 조선시대 읍지 ‘함주지’(咸州誌)와 일제강점기 고적조사보고에 아라가야 왕궁 추정지로 기록됐고, ‘남문외고분군’, ‘선왕고분군’, ‘신읍’(臣邑)과 같은 지명이 전하는 곳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이번에 나온 토성은 아라가야에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권력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며 “그동안 아라가야 유적 발굴은 고분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왕성 유적이 나오면서 최고지배층의 생활상을 유추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토성 상부는 이달 말까지 추가로 조사할 것”이라며 “조사 범위를 넓히면 왕성 규모를 파악하고 더 좋은 유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많이 본 뉴스

  • 4.10 총선
저출생 왜 점점 심해질까?
저출생 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인구 소멸’이라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저출생이 심화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녀 양육 경제적 부담과 지원 부족
취업·고용 불안정 등 소득 불안
집값 등 과도한 주거 비용
출산·육아 등 여성의 경력단절
기타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