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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단톡방서 ^^ 보냈다고… 학폭 가해자가 됐습니다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단톡방서 ^^ 보냈다고… 학폭 가해자가 됐습니다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8-06-28 22:18
업데이트 2018-06-2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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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정 논설위원이 진단했습니다 - ‘처벌 만능’ 학폭법에 멍드는 학교

“걸면 걸리는 것은 학교폭력(학폭)”이라는 냉소가 학교에서 유행이다. 2004년에 도입된 학교폭력예방법(학폭법)이 사이버따돌림 등을 추가해 개정된 지 5년째. 사소한 다툼까지도 학폭위에 회부하는 무분별한 신고에 학교가 속병이 들고 있다. “무조건 먼저 신고해야 유리하다”는 ‘학폭 계명’이 나돈다. 제도개선 논란만 거듭한 학폭법을 이제는 정말 손봐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높다. 입시제도만큼 공론화가 시급한 사안이 학폭법 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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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여고 3학년 김모양은 일찌감치 대입 재수를 각오하고 있다. 학교폭력에 연루돼 지난해 2학기 내신성적이 엉망이기 때문이다. 반 친구들 단톡방의 문자 하나에 고교 생활이 뒤죽박죽 꼬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친구들 단톡방에는 B양이 평소 반 운영에 비협조적인 친구 C양을 험담하는 글이 있었다. 김양은 단톡방에서 다른 친구의 말에 ‘^^’ 이모티콘을 보냈다가 C양을 헐뜯었다는 오해를 받았다. C양의 부모는 단톡방 대화들을 캡처해 다음날 학교폭력으로 신고했다. 학교 측은 단톡방에서 대화했던 5명을 모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에 회부했고 김양은 학폭 가해자로 징계를 받았다. 학폭 처벌은 아무리 경미해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된다. 김양의 어머니 정모씨는 “가해자로 낙인찍혀 입시를 망치게 된 딸이 억울해하니 교육청에 재심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중재 나섰다가 ‘학폭 은폐’ 몰릴라”

피해 학생에게 학폭이 얼마나 끔찍한지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일명 ‘학교폭력예방법’(학폭법)은 2004년 제정돼 여러 차례 개정됐는데, 현행법은 지난 2012년 대구의 중학생 권모군이 친구들의 괴롭힘으로 목숨을 끊자 사회적 충격 속에서 추가로 개정된 것이다. 사이버 따돌림을 추가하는 등 늘어나는 학교폭력을 학교 학폭위가 중심이 되어 선제적·자율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 근본 취지였다. 학교 폭력을 축소·은폐한 교원과 학교장을 징계할 수 있고, 학폭위의 처분이 불만인 피해 학생에게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새로 부여했다. 한마디로 학폭 가해자에 대해서는 신속하고 적극적인 처벌을, 피해자에게는 구제 범위를 더 확대한 조치였다.

학폭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로 보완된 현재의 학폭법은 그러나 최근 학교 현장에서 의도치 않게 가해자로 내몰리는 2차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우려가 쏠린다. 소소한 갈등조차 덮어놓고 학폭으로 신고하는 풍토가 확산한 탓이다. 경기도 한 중학교의 학폭 담당인 주모 교사는 “요즘 학부모들은 자녀의 학폭 피해에 극도로 예민하다. 사소한 문제도 신고서부터 제출하고 본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학폭 피해를 주장하는 학부모에게 가해 학생 측과의 화해를 섣불리 중재했다가는 학폭 은폐 교사로 내몰리기 십상이다.

학폭법(제13조)에 따르면 학교는 학폭 사실을 보고받으면 반드시 학폭위를 열어야 한다. 이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학폭을 축소·은폐했다는 사유로 학교 측은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 학폭 사건에 대한 일선 교사들의 화해나 중재 노력이 소홀해진 근본적인 이유다. 학폭 사건을 겪은 학생과 부모들 대부분이 교사와 학교의 무책임함에 상처를 입는 것도 그래서다. 지난해 중3 아들이 학폭 징계처분을 받았다는 학부모 박선주씨는 “아이들의 사소한 싸움이 중재 과정도 없이 일주일 만에 학폭위에 넘어가더니 학급 학생의 절반이 징계됐다”면서 “제자들을 재판에 넘기는 담임을 어느 학부모와 학생이 존경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학교의 행정편의주의적 대응을 꼬집은 것이다.

●학폭 담당은 교사들 기피 직무 1순위

이런 불신 속에서 학폭 담당 교사들의 고충은 상상을 초월한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기피 직무 1호가 학폭 전담이다. 새로 부임했거나 기간제 교사에게 학폭을 맡기는 폭탄 돌리기가 암묵적 관행일 정도다. 학부모 항의에다 스승으로서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어느 쪽도 지켜줄 수 없다는 자책감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는다. 학폭 처리 결과에 불만인 학생 측에게 소송을 당하는 사례는 흔하다. 학폭 심판관으로 등 떠밀린 교사들은 언제 당할지 모르는 소송에 긴장 상태다. 일부 시·도교육청에서는 학폭 담당 교사들의 배상 책임을 덜어 주는 단체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중학교에서 학폭위를 운영하는 장모 교사는 한 달에 한 번꼴로 교육청 재심에 참석하는데 심각하게 회의한다. 그는 “학폭위의 처분에 불복한 학부모를 상대로 학생을 합당하게 처벌했다고 맞서야 하는데, 과연 스승으로서 할 일인지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교사가 재판관이 돼야 하는 학폭법이 논란만 거듭하는 사이에 재심을 부추기는 상술은 기승을 부린다. 인터넷에서는 학폭 전문 행정사와 변호사들의 ‘학폭 상권’이 만들어졌다. 학폭위에 회부된 단계부터는 학교에 맞서야 하는 학생 측에는 행정사와 변호사의 도움이 절실하다. 학부모들은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리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소명서 작성 등 학폭위에 최대한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전문가에게 기대지 않을 수 없다”며 공감한다. 서류 작성을 대리해 징계 수위를 낮춘 사례가 많다고 소문난 행정사들은 시간당 상담비를 따져 받을 만큼 인기가 많다.

학폭위 처분에 불복할 경우는 재심 신청 과정에서도 번번이 높은 벽에 부딪힌다. 교육청의 재심 결과가 억울했지만 법적 대응 방안을 찾지 못해 포기한 사례도 적지 않다. 경기도의 학부모 황지연씨는 “최종 단계는 행정법원에 행정심판을 청구하는 것인데 도교육청 담당 부서조차 학교에 문의하라는 답변만 했다”며 “대립각을 세우는 학교에다 그런 문의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학교와 학생, 학부모 모두를 위해 현실을 감안한 학폭법 손질은 한시가 급한 실정이다. 지금의 학폭법은 신고와 처벌만 있을 뿐 교육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교육적 해결 기능을 학교에 돌려줘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학폭 사건에 대해 학교장이 종결권을 가져야 사소한 다툼은 교사들의 재량으로 중재할 수 있다. 교사들은 “학폭법 시행령 등에서 학교장 권한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안과 학폭위에 회부할 사안의 범위를 명확히 해 달라”고 주문한다.

●“공론화 기구 통한 학폭법 개정 필요”

이원화 체계로 학폭을 해결해야 한다는 각계의 제언이 쏟아진다. 학폭위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김경석 변호사는 “교사에게 사안 조사와 행정 절차를 전담시키는 현실에서는 전문성을 의심한 학부모들이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하고 재심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3년 764건이던 재심 건수는 2016년 1299건으로 폭증했다.

학폭 사안의 조사 등은 전담 경찰관이나 조사원에게 맡기고 학교는 학폭 예방 교육에 전념하게 하자는 제안도 적극 고려해 볼 만하다. 학폭위를 개별 학교가 아닌 교육지원청 산하에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관련 법안은 국회에 이미 발의돼 있다. 지난해 교육부는 올 초까지 학폭법 일부 개선안 마련을 약속했으나 아직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학폭법 개정이야말로 사회 공론화 기구를 통해 손질할 교육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sjh@seoul.co.kr
2018-06-29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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