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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자사고 폐지시 교육부 동의’ 판결…정책엔 영향없을 듯

대법 ‘자사고 폐지시 교육부 동의’ 판결…정책엔 영향없을 듯

김태이 기자
입력 2018-07-12 17:20
업데이트 2018-07-1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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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은 옛 법 시행령 문제로 2014년 제기…대법 취지대로 이미 시행령 개정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과거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정을 취소한 처분에 대해 교육부가 직권으로 이를 취소한 것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송에서 대법원이 12일 교육부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법령상 자사고 지정취소는 교육청이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취지다. 아울러 시행령에 교육감이 교육부 장관과 ‘협의’하도록 한 점도 판단 근거로 삼았다. 대법원은 이 ‘협의’의 의미가 사실상 동의를 뜻한다고 봤다.

이번 판결은 법령상 교육 당국의 권한과 일선 시도 교육청에 위임한 내용의 해석을 둘러싼 시비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교육계는 이번 판결이 현 정부와 진보성향 교육감들의 자사고 폐지 기조에 큰 영향을 주지 않으리라고 본다.

우선 문제가 된 법령 자체가 소송 제기 당시와 달리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취지대로 자사고 지정취소 시 교육감이 교육부 장관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이 개정됐다.

이번 소송의 시작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 교육감은 2014년 10월 경희고등학교 등 6개 자사고에 대해 운영성과평가 결과를 토대로 일반고로 전환하는 지정취소 처분을 내린다.

당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지정취소 처분을 취소하라고 조 교육감에게 명령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직권으로 취소했다.

이에 조 교육감은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교육감 권한을 행사한 것으로 시정명령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교육감이 자사고 지정을 취소하는 경우에는 미리 교육부 장관과 협의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합의’나 ‘동의’가 아닌 ‘협의’로 규정된 점을 들어 시행령 규정이 “교육부 장관에게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주라는 것으로 장관의 동의를 받으라고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반면 교육부는 장관과 교육감 간 협의 절차를 규정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지정 협의에 관한 훈령’ 등을 보면 장관은 ‘동의·부동의·조건부 동의’ 중 하나의 의견을 내고 교육감이 이에 따르게 돼 있다는 점을 근거로 자사고 지정취소 시 장관의 동의가 꼭 필요한 것으로 봤다.

협의냐 동의냐를 두고 논란이 일자 교육부는 2014년 12월 ‘자사고 지정취소 시 미리 교육부 장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바꿨다.

사전동의가 시행령에 이미 명시된 상황이라 이번 대법원 판결은 서울시교육청과 교육부 간 3년 8개월에 걸친 다툼을 마무리했다는 것 이상 의미를 갖기는 어렵다.

조 교육감도 이날 내놓은 입장문에서 “대법원이 행정기관 간 갈등에 대해 판결한 것에 불과하다”면서 “대법원이 자사고 폐지를 반대한다고 과잉해석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조 교육감을 비롯한 진보교육감들이 운영성과평가를 통해 자사고 지정취소를 다시 추진한다고 해도 과거처럼 교육부와 충돌할 여지는 거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자사고 폐지는 문재인 정부 공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영성과평가를 통한 자사고 지정취소가 다시 추진될 가능성은 작아보인다.

지난해 조 교육감은 장훈고·경문고·세화여고 등 3개 자사고를 재지정했다.

성과평가 결과 재지정 기준을 넘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 교육감은 “기본점수만으로도 (자사고에서) 탈락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평가지표를 바꾸지 않는 한 운영성과평가로 자사고를 폐지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조 교육감은 이날 “운영성과평가나 일반고와 동시전형 등 자사고 학생선발특권을 완화하는 제도 도입에 그치지 말고 자사고 제도를 폐지하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해야 한다”면서 초중등교육법상 자사고 설립근거를 삭제하자고 제안했다.

또 “자사고 폐지는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국민의 명령”이라면서 폐지권한을 교육감에게 달라고도 요구했다.

한편 대법원이 판결문을 통해 “새로운 교육제도는 충분한 검토와 의견수렴을 거쳐 신중하게 시행돼야 하며 그런 과정을 거쳐 시행된 교육제도를 다시 변경할 때는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주문한 점은 눈길을 끈다.

최근 ‘생존’을 위협받게 된 자사고가 정부정책에 반발해 법적 대응에 나서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서울과 경기 자사고·외고·국제고들은 일반고와 같은 시기에 입학전형을 시행하도록 규정한 ‘고등학교 입학전형 기본계획’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서울과 경기 교육청을 상대로 제기했다.

이에 앞서 자사고 지망 학생들이 자사고와 일반고 동시전형과 자사고 지원자의 일반고 지원을 금지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지를 신청하기도 했다.

지난달 헌재는 “학생들이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을 수 있다”며 일반고 중복지원을 금지한 조항의 효력을 본안 선고 때까지 정지시켰다.

자사고와 일반고 동시전형 조항 효력정지는 받아들여지지 않아 고입정책을 대폭 손봐야 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중복지원이 가능해지면서 중복지원 금지로 자사고 지원율을 낮추려던 당국의 정책은 다소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6·14 지방선거에서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승리하면서 자사고 폐지 등 이른바 교육개혁 정책에 ‘드라이브’가 걸릴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됐다는 평가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사법부가 ‘신중한 교육정책’을 강조하는 판결을 이어갈 경우 진보교육감들의 정책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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