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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의 미학, 슬픔에 옳고 그름은 없다

애도의 미학, 슬픔에 옳고 그름은 없다

입력 2018-07-30 18:52
업데이트 2018-07-3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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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산 자가 죽은 자를 추모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인류는 장례 문화를 갖췄고, 권력자들은 살아서건 죽어서건 장대한 분묘를 만들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부터 로마의 초상 조각과 석관까지 죽음을 매개로 한 서양 미술품은 많다. 아시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 왕릉이나 신라 고분 출토 공예품, 고구려 벽화고분도 이 범주에 있다. 죽은 자를 기리려는 것이라기보다 그가 지녔던 생전의 권력을 과시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동과 서가 다르지 않다.

누구에게는 권력과 위계를 만천하에 보여 주는 일이 중요했고, 누구에게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절절한 애도가 필요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처럼 예수를 잃은 마리아의 비통을 숭고하게 표현한 작품도 있고, 십자가에서 끌어내려진 예수를 바라보는 애통한 심정을 묘사한 제단화도 있다. 성경이나 신화 속의 죽음을 조롱하거나, 처절하게 죽음을 직시하는 그림들도 그려졌다. 아시아는 어떤가. 아시아에서는 죽은 자를 직접 묘사하거나 그가 죽음을 맞는 상황, 즉 죽음을 마주하며 이제까지의 ‘생’과 전혀 다른 상황에 직면한 사람들을 표현한 경우가 없다. 단 한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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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열반도>, 1086년, 267.3x271.1 cm, 일본, 고야산 곤고부지
<석가열반도>, 1086년, 267.3x271.1 cm, 일본, 고야산 곤고부지
그것은 석가모니의 열반이다. 열반은 보통 사람의 죽음과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애도했고, 미술에서도 그렇게 재현했다. 일본 고야산(高野山) 곤고부지(金剛峰寺)의 ‘석가열반도’(1086년)에는 열반을 애도하는 다양한 군상이 그려졌다. 두 그루의 사라나무 아래 열반에 든 석가모니를 온갖 짐승과 사람, 천인, 보살들이 에워쌌다.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열반을 대한다. 석가모니의 왼편 아래에는 눈물을 훔치며 인간적으로 흐느껴 우는 왕과 대신들이 있고, 발치에는 피눈물을 흘리는 또 다른 왕이 있다. 왼편 위쪽에 그려진 보살은 세속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열반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에 슬퍼하는 대신 평온하게 미소를 짓는다. 온몸으로 비통해하는 사자도 있다. 화면 하단 오른편 구석에서 슬픔에 못 이겨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이다. 높이가 267.3㎝에 이르는 이 대형 불화는 보는 사람 누구나 쉽게 석가모니의 열반을 기억하고 애도하게 한다. 그림 속 군상처럼 누군가는 통곡을 하고, 누군가는 가슴을 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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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라 호류지(法隆寺) 오중탑 조각.  8세기
일본 나라 호류지(法隆寺) 오중탑 조각. 8세기
일본 나라 호류지(法隆寺) 오중탑에도 8세기에 만들어진 열반 조각이 있다. 석가모니의 열반, 곧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죽음을 슬퍼하는 여러 형상의 군중이 보인다. 이들은 흙을 빚어 만든 소조상들인지라 감정의 기복이 매우 잘 드러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석가모니의 제자들이다. 이들은 석가모니가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해 왔다. 그런데도 제자들의 얼굴은 막상 스승의 죽음을 맞닥뜨리자 놀랍고 당황스러워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슬픔에 일그러졌다. 어떤 이는 소리를 내어 통곡을 하고, 어떤 이는 머리를 쥐어뜯고, 어떤 이는 두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쾅쾅 친다. “오호, 애재라!” 하던 ‘조침문’ 속 점잖은 글월과 달리 비통에 빠진 인간의 자학적 감정 표현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무릎을 꿇고 앉아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막 닦으려 하는 석가모니의 제자. 이 조각상의 온몸에서 절절이 배어 나오는 슬픔이 보는 이들 맘속에 그대로 전해진다. 조각가는 최선을 다해 애도의 감정을 드러냈다. 목까지 차오르는 스승을 여읜 슬픔을 1000년 전의 예술가는 어찌 이리도 애절하게 묘사했고, 또 21세기의 우리는 그 애곡함에 공감하는가.

슬픔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소리를 지르든, 통곡을 하든, 조용히 눈물을 훔치든 저마다의 애도 방식이 있다. 애도의 미학은 우리를 당시의 시간과 현장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늘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다.

<글: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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