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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보고서…진보의 탈 쓴 惡을 말하다

악녀 보고서…진보의 탈 쓴 惡을 말하다

조희선 기자
조희선 기자
입력 2018-07-30 22:26
업데이트 2018-07-30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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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5년 만에 신작 소설 ‘해리’ 출간

‘봉침 여목사’ 연상…5년간 실화 짜깁기
“소설 속 도시 무진은 대한민국 축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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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등단 30년째인 공지영 작가는 “공상 과학, 고려사, 사랑 이야기 등을 주제로 한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언제까지 작가로 활동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면에 있는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는 작업을 이어 가고 싶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연합뉴스
올해 등단 30년째인 공지영 작가는 “공상 과학, 고려사, 사랑 이야기 등을 주제로 한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언제까지 작가로 활동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면에 있는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는 작업을 이어 가고 싶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연합뉴스
“이 소설은 한마디로 어떤 악녀에 관한 보고서입니다. 민주주의가 후퇴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제가 목격한 악(惡)은 1980년대나 그 이전의 어떤 단순함과는 굉장히 다르더라고요. 재벌과 가진 자들의 횡포가 극심해지는 사회에서는 간단한 말로도 진보와 민주주의의 탈을 쓸 수 있고, 그것이 예전과는 달리 돈이 된다는 것을 체득한 사기꾼들이 몰려든다는 것을 알게 됐죠. 우리가 지금부터 향후 몇십년간 싸워야 할 악은 아마도 진보와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엄청난 위선을 행하는 그런 무리가 될 것이라는 작가로서의 감지를 이 소설로 형상화했습니다.”

올해로 등단 30년째인 공지영 작가가 5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해리 1·2’(해냄)를 펴냈다. ‘도가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 그간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소설로 형상화해 온 작가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이면을 들춰낸 작품이다. 작가는 3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에서 악으로 묘사한 사람들은 우리가 쉽게 선이라고 믿고 정의라고 믿었던 가톨릭과 사제들, 장애인 봉사자, 기자, 그리고 수많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이라면서 “위선을 행함으로써 돈을 긁어모으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이들이 막말을 내뱉는 극우 정치인보다 우리를 더 혼란스럽게 하고, 이들을 새로 경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소설을 쓰게 됐다”고 집필 배경을 밝혔다.

‘해리’는 안개의 도시 ‘무진’에서 권력자와 성직자를 쥐락펴락하는 여성 ‘이해리’와 그와 결탁해 기부금·후원금 등을 가로채고 ‘성령의 뜻’이라며 여성들을 성추행하는 신부 ‘백진우’ 등 선(善)이라는 가면을 쓴 사람들 이면에 도사린 악의 진실을 파헤친 작품이다. 이해리가 유력 인사들과 지역민들에게 봉침(벌침)을 놔주고 돈을 챙기거나 입양한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의 몇몇 장면은 ‘전주 봉침 여목사 사건’과 겹쳐 보인다. 공 작가는 “이 소설은 사실에 의거한 것이 많지만 모두 허구다. 한두 사람을 미화하거나 모델로 삼지 않았다. 지난 5년간 수집했던 실화들을 짜깁기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엮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특정 사건에 대한 작가의 직간접적인 비판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는 “수많은 도시에서 지방 토호와 정치인들이 형성한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약자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봐 왔다”면서 “작품 속 무진이라는 공간은 ‘도가니’에서도 그랬듯 특정 장소를 지칭하기보다 대한민국을 압축해 놓은 장소”라고 설명했다.

최근 이재명 경기지사와 배우 김부선의 스캔들에서 김씨를 옹호하는 입장을 적극 표명했던 일과 관련해서는 말을 아꼈다. 공 작가는 “생각없이 앞뒤 못 가리고 어리석어서 벌거벗은 임금님이 지나가면 아무데서나 ‘벌거벗었네’라고 말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 같다”면서도 그 행동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한 사람이 울고 있는데, 부당한 피해를 당하고 있는데 새 작품 출간을 앞두고 있다고 해서 나에 대한 독자들의 이미지를 생각해서 신중하게 생각하고 그럴 수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2018-07-3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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