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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북맹타파가/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열린세상] 북맹타파가/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입력 2018-11-25 22:44
업데이트 2018-11-25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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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있고 못 들으면 귀머거리요, 입 가지고 말 못하면 벙어리라지, 눈 뜨고도 못 보는 글의 소경은 소경에다 귀머거리 또 벙어리라…. 낫 놓고 ㄱ자를 누가 모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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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우리나라 2000만 인구 가운데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자는 80%에 달했다. 당시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한글 강습회를 열어 말과 글을 통해 민족 정신을 불어넣는 일을 실천했다. 이때 노래로 글자를 풀어서 한글을 쉽게 깨우칠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문맹타파가’다.

일 년 전을 돌아보면 전문가들조차 2018년 한반도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했다. 평양 정상회담 기간 중 화면 속 평양 거리에 놀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북·미 관계가 아직은 더디게 가지만, 아침마다 들리는 남북 관계의 새 소식이 여전히 생소하다. 비무장지대 내 도로가 연결돼 남북한 군인이 만나 손을 잡았다. 유엔 안보리가 남북 철도 연결 공동조사에 대해 제재 예외를 인정했으니 연내 착공식도 가능할 듯하다. 우리의 삶 속에 전쟁의 공포가 아닌 평화가 일상화되는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변화가 가능했던 한 축에는 분명 북한의 변화와 선택이 있다. 너무 오랜 시간 분단의 삶이 일상화한 탓에 많은 사람들에게 지금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란 힘겨운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이 순간 북한을 바로 보지 않으면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고 미래를 그리기 어렵다. 편견과 의심으로 가득 찬 시각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변화하는 모습 그대로를 보는 냉철함이 필요할 때다.

그러나 정작 북한을 이해할 말과 글의 통로가 막혀 있다. 북한에서 제작 발행한 간행물과 영상물, 디지털 콘텐츠의 대부분은 소위 ‘특수자료’로 마음대로 볼 수가 없다. 관련 사이트 역시 차단돼 있다. 얼마 전 독일에서 만난 과거 서독의 고위 인사는 한국 사회에서 북한 신문을, TV를 볼 수 없다는 말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놀라워했다. 우리는 눈 뜨고도 북한의 글과 말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소경에다 귀머거리 신세다. 다들 북한 전문가인 양 행세하지만 정작 북한에 대해 북맹(北盲)이 아닌지 반성해 본다.

북한 자료가 소수의 전유물이 돼서는 안 된다. 노동신문의 원문과 조선중앙TV의 화면은 거의 실시간 우리 언론 매체로 전달되고 있다. 인터넷으로 어렵지 않게 북한의 출판물과 영상물을 접할 수 있다. 막힌 사이트조차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다.

오히려 통제로 한두 단계 거친 자료는 수요자의 입맛에 따라 가공되고 변질돼 더 심한 북맹을 만들고 있다. 또 비싼 돈을 요구하는 정보 장사꾼의 주머니만 불려 주고 있다. 이젠 더이상 자료가 없어 북한에 대한 연구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옛말이다. 어떤 자료가 진짜이고 가짜인지 가려 내기가 어려워서 연구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규정으로 순수 연구와 교육을 위한 자료에 대한 욕심이 자칫 범법자를 양산할 수도 있는 셈이다.

종교, 사회, 문화, 역사, 체육 등 민간 차원의 남북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언론사 간에는 평양지국을 누가 가장 먼저 낼 것인가 촌극을 벌이는 상황인데, 여전히 북한의 간행물이나 방송에 대한 접근을 막고 있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북한과의 체제 경쟁하에서 방어라는 논리는 촛불을 들었던 시민에 대한 모독과도 같은 것이다.

민주주의의 힘은 바로 국민의 알권리를 바탕으로 한 공개성, 투명성에서 나온다. 북한 자료가 공개된다면 처음이야 궁금증과 호기심에 볼 수 있겠지만 금방 관심이 시들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 국가의 안보에 침해되는 범죄에 이른다면 법에 따라 처벌하면 될 일이다.

우리 사회에 북한 방송이나 출판물을 개방한다면 걱정을 해야 할 쪽은 한국이 아니라 북한일 수 있다. 우리 국민이 마음대로 북한의 신문과 방송물을 볼 수 있다면 오히려 북한이 말과 글에 보다 신중하고 정제된 표현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북한 간행물과 영상물에 대한 개방은 우리 사회가 한반도 평화 번영을 노래하는 북맹타파가(北盲打破歌)이자 북한의 작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신뢰의 선공(先攻)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 본다.
2018-11-2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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