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떠난 이를 기억하고, 남은 이를 위로했던 ‘위 아 더 챔피언스’

떠난 이를 기억하고, 남은 이를 위로했던 ‘위 아 더 챔피언스’

입력 2018-12-24 22:54
업데이트 2018-12-25 03:22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올해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들이 꼽은 ‘바로, 이 순간’

올해도 ‘서울신문 문화부’는 독자들의 볼거리를 찾아 문화계 이곳저곳을 쉼 없이 돌았습니다. 오늘은 조금 달라지려 합니다. 지난 지면들이 오롯이 당신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면 오늘만큼은 지면에 풀어내지 못했던 기억들을 저희의 시각에서 되새겨 보려 합니다. 올해 문화부 기자들이 접했던 소름 돋는 순간들, 감동적인 장면들을 꼽아 봤습니다.

■먼 땅에서도 울고 웃게 한 ‘머큐리의 랩소디’
이미지 확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올해의 영화로 ‘보헤미안 랩소디’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만 관객 850만명을 돌파했으니 그야말로 ‘광풍’이라 할 만합니다. 영국 출신의 록밴드 ‘퀸’이, 특히 팀을 이끌었던 프레디 머큐리의 생애가 멀고 먼 한국의 국민들을 이렇게 울고 웃게 할 줄은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겠죠. 지난 11월 어느 날,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보기 위해 한 극장의 싱어롱(영화를 보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 상영관을 찾았습니다. 평일 이른 오후라서 그런지 관객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적극적이진 않았습니다. 영화의 백미인 ‘라이브 에이드’ 공연 장면이 나올 즈음 제 옆에 앉아 있던 한 젊은 여성 관객이 눈가를 수시로 훔쳤습니다. 훌쩍이는 소리를 듣고서야 그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죠. 영화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에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퀸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퀸의 오래된 팬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영화가 한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공항에서 수하물 노동자로 일하며 음악의 꿈을 키우던 이민자 출신의 프레디 머큐리가 전 세계를 열광케 하는 전설의 보컬이 된 과정이 관객들에게 전한 메시지가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우리는 승리자예요, 친구들이여. 그리고 우린 끝까지 계속 싸워나갈 거예요”(‘위 아 더 챔피언스’ 중)라고 그가 외쳤듯 우리에겐 누구나 ‘인생의 챔피언’이 될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큰 격려가 필요했을지도요. 새삼 음악이 지닌 치유의 힘에 놀랍니다. 역시 ‘올해의 챔피언’ 답습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故허수경 시인의 49재… 목놓아 읊은 염불과 詩
이미지 확대
“나막 살바다타 아다 바로기제 옴 삼바라 사바라 홈.”

지난달 20일 경기 고양의 북한산 중흥사에서는 시인들이 자신의 시 대신 염불을 읊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그날은 독일 뮌스터에서 암투병 끝에 유명을 달리한 고 허수경 시인의 49재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시인들은 염불 같은 시를, 시 같은 염불을 목놓아 읊었습니다.

시 쓰는 이들의 작별 인사에서는 역시 시가 화두였습니다. 허 시인 생전에 교분이 깊던 문우들은 그의 영전에 살가운 헌사를 바쳤습니다. 허 시인에게서 밥을 얻어먹은 적이 있다는 함성호 시인은 “당신, 거기선 밥 굶지 않았겠지. 거기선 함부로 밥 사 주지 않았겠지” 하며 시 ‘혼자 가는 먼 집’을 패러디했고요. 문학과지성사 대표이기도 한 이광호 문학평론가는 시인의 짐을 덜어주려는 듯 “먼 곳의 시인에게는 시를 다시 기다리고 있다는 기척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병률 시인은 “부디 세상을 시로 덮어주세요. 당신이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을 때마다 부디 폭설로 내려와 주시게요” 했습니다. 딴 세상에서는 시에게서 자유롭기를, 그러면서도 꼭 시로 내려와 주기를 바라는 상반된 마음이 담겼습니다.

마지막 즈음 김민정 시인은 말했습니다. “언니,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말해 줘서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시인들의 인사는 세밑에도 참고할 만합니다. 평소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말해 준 이들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세요.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BTS 월드투어 출정식· H.O.T. 재소환에 들썩
이미지 확대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
올해는 말 그대로 방탄소년단의 해였습니다. 올해 취재현장에서 느낀 감동 역시 방탄소년단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8월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러브 유어셀프’ 월드투어의 첫 공연을 열었습니다. 4만 5000여 객석을 가득 채운 팬들은 3시간 공연 내내 잠시도 지칠 틈 없이 환호했습니다. 이들이 ‘떼창’을 할 때는 팬덤 이름인 ‘아미’처럼 마치 잘 훈련된 군대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이미지 확대
H.O.T.
H.O.T.
두 달 뒤 올림픽주경기장을 다시 찾게 됐습니다. 이번에는 한국 아이돌 그룹의 시초 H.O.T.의 재결합 콘서트를 보기 위해서였죠. 찾아온 관객들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습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온 엄마, 연인·친구와 함께 온 관객들은 나름대로 열띤 응원을 펼쳤지만 ‘아미’들만큼 열광적일 수는 없었죠. 그러나 옛 추억을 떠올리는 관객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17년 전 H.O.T.가 마지막 콘서트를 열었던 이곳은 2018년 방탄소년단이 세계를 향한 발걸음을 시작하는 곳이 됐습니다. 다시 20년 뒤에는 방탄소년단이 미국 시티필드 스타디움, 영국 O2아레나 등에서 전 세계 ‘아미’들을 추억에 젖게 하지 않을까요. 상상만으로도 한없이 뭉클해지는 장면입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흩뿌린 이별의 몸짓… 숨죽인 칠순 거장의 첫 음
이미지 확대
네덜란드댄스시어터1(NDT1)
네덜란드댄스시어터1(NDT1)
이별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들을 법한 막스 리히터의 음악에 맞춰 바닥에 깔린 흰 가루 위에서 무용수들이 춤을 춥니다. 10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네덜란드댄스시어터1(NDT1)의 내한공연 가운데 마지막 프로그램이자 대표 레퍼토리인 ‘스톱 모션’. 세계적 무용수들의 단련된 근육은 강렬한 조명을 받으며 더욱 뚜렷한 굴곡을 드러냈습니다. 무용수들의 몸짓과 무대 위에서 부유하는 흰 가루를 보며 삶을 스쳐 지나간 몇몇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사람마다 내면 깊숙이 숨겨놓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몸짓이 선뜻 꺼내놓지 않는 감정의 편린을 건드린 듯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습니다.
이미지 확대
미클로시 페레니 헝가리 첼리스트
미클로시 페레니 헝가리 첼리스트
‘노래하듯이 천천히’. 지난 9월 서울시향과의 협연을 위해 내한한 헝가리 첼리스트 미클로시 페레니가 연주한 차이콥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는 여기에 뜻을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경건하고 겸손하게’. 담백한 첼로의 첫 음을 듣고 떠오른 생각입니다. 훤칠한 외모를 자랑하는 요즘 연주자들에 익숙해졌기 때문이었을까요. 헝가리에선 박봉이라는, 음악원 교수 월급으로 살아가는 70세 페레니의 허리는 더욱 구부정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없을 첫 음으로 시작하며 감탄을 자아낸 그의 연주는 적당한 솔로 소품으로 마무리할 법한 앙코르에서조차 시향 단원들을 다시 불러모아 차이콥스키 ‘녹턴’을 들려주며 성의를 다해 마무리됐습니다. 젊은 연주자들에게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은 바로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하는 칠순 거장의 모습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판문점 도보다리 탐방, 평화관광은 언제쯤…
‘도보다리 탐방’
‘도보다리 탐방’
광복절을 하루 앞둔 8월 14일, 비무장지대(DMZ)로 향하는 단체 버스에 올랐습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DMZ를 평화 관광지, 평화 교육의 현장으로 바꾸겠다”며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과 전국 시·도교육감을 모두 불렀습니다. 동행 취재를 신청했고, 제비뽑기에 뽑혀 함께 갔습니다. 취재 일정 가운데 ‘도보다리 탐방’이 있어 더 설렜습니다. 도보다리는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건물과 중립국감독위원회 캠프 중간에 있는 50m 길이 작은 다리를 가리킵니다.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산책하고, 30여 분간 회담하며 유명해진 곳입니다.

동쪽으로 난 계단을 내려가 도보다리를 걸었습니다. 중간에 ‘T’자 형태로 된 곳으로 10m 정도 더 들어갑니다.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하나 놓였습니다. 문 대통령과 김 국무위원장이 취재진을 모두 보내고서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던 바로 그곳입니다. 뒤로는 수풀이 우거지고, 마구 자란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렀습니다. 생중계로 보던 곳에 있으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둘은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궁금하기도, 남과 북이 한 걸음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뭉클하기도 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통일까지 우리는 얼마나 더 가야 할까. 도보다리에서 들었던 풀벌레 소리가 여전합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18-12-25 21면

많이 본 뉴스

  • 4.10 총선
저출생 왜 점점 심해질까?
저출생 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인구 소멸’이라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저출생이 심화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녀 양육 경제적 부담과 지원 부족
취업·고용 불안정 등 소득 불안
집값 등 과도한 주거 비용
출산·육아 등 여성의 경력단절
기타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