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배심원들’은 양형 결정만 남아 있던 살해 사건의 피고인이 갑자기 혐의를 부인하면서 유무죄를 다투게 된 배심원들의 이야기다. 원칙주의자 재판장 김준겸(문소리)이 신속하게 재판을 끝내려는 가운데 끈질기게 의문을 제기하는 8번 배심원 권남우(박형식)의 돌발 행동에 재판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는 과정이 촘촘하게 그려진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홍승완 감독은 “유의미한 일을 해내는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함에 대한 이야기”라고 이 영화를 소개했다.
홍 감독은 장편 데뷔작인 ‘배심원들’의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사전 취재와 조사 과정에 많은 공을 들였다. 2008년 1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살인 사건과 유사한 사건 80여건과 1, 2심 판결이 엇갈린 재판 판결문 540여건을 참고했다. 또 현직 법관으로는 처음으로 배심제 도입을 주장하고 국민사법참여제도의 틀을 만들었던 김상준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만나 자문을 구했다.
“김 전 부장판사의 로스쿨 강의를 청강했는데 첫 수업 때 학생들에게 ‘법이 왜 있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법은 사람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사실 배심원들에게는 남의 일이나 다름없잖아요. 자신들의 의견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실제 현장에서 판사들이 의아하게 여길 정도로 배심원들의 참여율이 높다고 해요. 제 생각엔 배심원들이 피고인이 겪은 삶의 고단함과 아픔을 자기 일처럼 공감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영화는 기존의 법정 드라마가 판사나 검사, 변호사 등에 주목한 것과는 달리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배심원들의 대화에 초점을 맞춘다.
“실제 재판을 참관하던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판결을 하는 건 세상을 지배하는 엘리트들인데 이들이 과연 법과 논리로만 평범한 사람들의 복작복작한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엘리트들이 세상을 지배하지만 사실 평범한 사람들의 별 것 아닌 삶의 경험이나 체험, 감정이 위대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보통 사람들의 경험이 하나하나 집단지성처럼 모이면 한 명의 엘리트보다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을요.”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