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진시점 직접 밝혀라’ 요구에 靑 “국회결정 따르겠다” 반복
박근혜 대통령이 구체적인 퇴진 시점을 스스로 밝혀야 한다는 정치권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그러나 3차 대국민담화에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선언한 박 대통령은 여전히 국회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의견 제시를 꺼리는 모습이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1일 기자들과 만나 “국회 결정에 따른다고 했으니 국회에서 조속히 논의되기를 바란다”는 말만 반복하며 국회에서 퇴진 로드맵을 만들어 제시해줄 것을 거듭 요청했다.
표면적인 기류와는 달리 박 대통령도 새누리당과 마찬가지로 내년 4월 조기 사퇴에 무게를 싣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국 혼란의 장기화를 막기 위해 대선을 상반기로 앞당겨야 한다고 본다면, 사퇴 후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현행 헌법에 따라 4월 말까지는 물러나야 한다는 데 청와대 안팎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달 27일 전국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등 정·관계 원로들이 ‘내년 4월까지 하야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은 것과 같은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저는 원로들의 제안이 대통령 사임 시기에 대한 논의에서 충분한 준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4월 퇴진, 6월 대선’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 여야 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새누리당 비주류로 구성된 비상시국위원회도 이날 “박 대통령의 사퇴 시한으로 내년 4월30일이 적당하다고 말씀드렸다”고 밝혔고, 비주류 좌장 격인 김무성 전 대표도 이런 입장을 공개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은 향후 정치일정과 퇴진방식을 놓고 첨예하게 맞부딪히는 정파별 이해관계 속에서 자칫 협상이 깨질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단 박 대통령의 거취를 놓고 야 3당과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는 늦어도 9일까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친박(친박근혜)계가 내놓고 박 대통령이 수용한 ‘질서있는 퇴진’의 협상부터 하자는 의견에는 비박계가 야당보다는 같은 당 친박계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특정 시점에 물러나겠다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직접 제시하면 제안의 순수성을 의심받을 수 있고, 찬반 논란만 일으켜 오히려 협상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청와대 내부에 퍼져있다.
특히 야당으로서는 박 대통령이 4월을 퇴진 시점으로 제시할 경우 ‘당장 물러나라’는 목소리만 높이고 대화의 문을 닫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시점을 내놓지 않고 최대한 논의의 공간을 열어두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이날 김 전 대표와의 회동에서 “박 대통령의 사퇴는 늦어도 1월 말까지 이뤄져야 한다”며 입장차를 보였다.
한 참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퇴진 시점에 대해 이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대통령이 수용 여부를 밝힐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며 “여당 비주류의 의견이 나왔고 원내 지도부도 이런 식으로 야당과 협상하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추 대표가 탄핵 강행 외에 처음으로 퇴진 시점을 거론했다는 점에서 탄핵 D데이로 꼽히는 오는 9일 전까지 여야 협상이 시작될 여지가 생겼고,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여당이 4월보다 퇴진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따라서 청와대는 내주초 정도로 예상했던 기자회견 문제도 시기와 형식을 놓고 신중하게 검토하는 기류다. 일각에서는 아예 취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최순실 사태’와 관련한 각종 의혹을 소명하는 게 기자회견의 1차 목적이지만 구체적인 퇴진 시점 등에 관한 견해를 밝히라는 질문이 나올 것이 뻔해 여야 협상의 공간을 넓힌다는 차원에서 당장은 어렵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어서다.
그러나 김 전 대표 등 여당 비주류가 박 대통령이 퇴진 로드맵을 직접 밝히지 않을 경우 9일 탄핵에 동참하겠다고 압박하고 있어 과연 박 대통령이 끝까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