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올림, 시민단체 등과 연대 조정위 구성 반대 잇단 무리수… 피해자 가족 중심 협상 외면

김양진 기자
조정위 구성에 반대했던 또 다른 협상 주체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은 지난 10일 공개 서한을 통해 “김 전 대법관이 삼성의 도구로 쓰이는 것이 안타깝다. 조정위원회가 황상기씨, 김시녀씨를 배제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걸 알고 있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황씨와 김씨는 애초 삼성전자 직업병 협상에 참여했던 피해자 8명 중 반올림에 남은 2명입니다.
이후 각종 사회단체가 잇따라 조정위를 규탄합니다. 지난 15일 반올림이 금속노조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 신부는 “삼성이 조정위 뒤에 숨은 건 쥐새끼같이 유치하고 치졸한 짓”이라고 비판했습니다. 21일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가 “삼성은 조정위 구성을 제안하며 뒷전으로 빠진 채 피해자들의 고통만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민주국가에서 약자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연대하는 일은 분명 필요하고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하루빨리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길 원하는 피해 가족들이 그 과정에서 희생된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 아닐까요. 한 피해 가족은 “반올림은 원래 직업병 피해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단체 아닌가. 이제 좀 잊고 싶다는 피해자들을 내치면서까지 어떻게 자기 주장만 하느냐”고 토로했습니다.
존중받아야 할 소신이 진영 논리에 위축되는 것도 우려됩니다. 김 전 대법관은 약자의 편에 섰던 과거 이력만으로도 존경받으며 살 수 있을 겁니다. 이번에도 삼성 직업병 피해자를 도와 달라는 요청에 기꺼이 나섰습니다. 그런 그가 반올림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삼성 편”이라고 일방적으로 매도당해야 하는지 씁쓸할 뿐입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2014-10-2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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