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日·EU·中에 기업결합신청서 제출
日, 경제 보복 차원 불승인 가능성 촉각점유율 상한·자산 매각 등 요구할 수도
일본발(發) 경제보복 불똥이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에까지 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속에 일본이 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의 조선·해양 부분 중간 지주회사)과 대우조선의 기업결합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대신 현대중공업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걸어 스스로 기업결합을 포기하게 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지난 1일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에 대우조선 인수 심사를 신청했다. 이어 이달 안에 일본, 유럽연합(EU), 중국, 카자흐스탄에 신청서를 낸다. 각국 공정거래 당국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독과점 우려가 없는지 살핀다.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두 회사의 결합은 무산된다.
문제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제조 공정에 사용하는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을 규제한 일본이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의 기업결합을 불허하는 식으로 한국 조선산업을 타깃으로 추가 보복을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일본이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하고 시장점유율 상한을 두거나 자산 매각 등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기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세계 선박 수주 점유율은 21.2%로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선종별로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양사의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점유율 합계는 세계 시장의 72.5%를 차지한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점유율도 60.6%로 50%를 훌쩍 넘는다.
만약 일본이 내건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현대중공업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업결합은 무산된다. 일본의 조건을 무시하고 결합을 강행했다가는 현대중공업그룹이 일본 사업을 포기해야 하므로 사실상 불가능하다.
박영호 창원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일본의 기업결합 거부는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일본은 조선 ‘빅3’ 안에 드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나라”라면서 “현재 상황은 일본 참의원 선거 국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정치적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현대중공업으로서도 예측하지 못한 변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결합은 단순한 한일 양국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이해가 얽힌 문제다. 일본이 정치적 이유로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심사는 각국의 법령과 지금까지 쌓인 수많은 전례를 기준으로 진행한다. 심사에 짧게는 120일부터 길게는 6개월까지 걸린다. 그 기간 중에 양국의 관계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기업결합 심사, 산업은행과의 지분 교환 등 대우조선 인수 절차를 최대한 빨리 마무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이번 심사를 통과하면 미국 등 나머지 국가에도 심사를 신청할 계획이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2019-07-04 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