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현대증권까지 가져가면 갈등 증폭 우려
산업은행의 현대증권 인수 작업이 본격화하면서 금융권과 재계에서는 24일 매각 가격과 새 주인이 누가 될 것이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현대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매물로 내놓은 현대증권의 시장가격과 장부가격이 차이가 나면서 가격 협상에서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에 이어 현대증권 등 현대금융 3개 계열사까지 가져가면 현대그룹과의 신경전이나 갈등이 증폭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현대증권 매각 착수…가격 변수
현대그룹은 현대증권과 현대자산운용 현대저축은행 등 금융 계열 3개사를 우선 산업은행 특수목적회사(SPC)에 넘겨 자금을 수혈받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따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현대증권 기업실사에 착수했다.
현대증권 매각은 산업은행이 사모주식펀드(PEF)를 조성해 현대증권 지분을 인수한 뒤 자금을 현대그룹에 넘겨주고 이후 지분을 시장에 되파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매각 방식은 PEF에 재무적투자자(FI)나 전략적투자자(SI)로 참여한 투자자가 추후 현대증권을 인수해가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문제는 매각 자금을 놓고 그룹과 시장의 시각차가 크다는 데 있다.
현대증권 지분의 장부가는 5천900억원으로 집계됐다. 현대그룹은 현대증권의 매각가치를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7천억원 이상으로 예상한다.
현대그룹이 보유한 현대증권 지분(보통주)은 현대상선 보유지분(25.9%)과 현대증권 자사주(9.83%)를 합쳐 총 36% 정도이며 우선주는 13.57%이다.
시장가는 장부가에 훨씬 못 미친다. 전날 종가 기준으로 현대증권의 지분 가치는 보통주와 우선주를 더해 약 3천800억원으로 평가됐다.
올해 들어 하향세인 현대증권의 주가와 증권업 불황 등을 고려할 때 시장에선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하더라도 장부가에 걸맞은 가격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현대증권 매각가격이 장부가에 미달할 가능성이 있어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소폭 올라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상선은 1조1천억원 규모 LNG 운송사업을 매각하면 연말까지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생기고 1천%대이던 부채비율도 600%로 낮아질 전망이다. 그러나 현대증권을 장부가보다 낮은 가격에 팔면 부채비율은 소폭 올라갈 수 있다.
장부가와 시장가의 괴리 속에 산업은행의 고민도 커질 전망이다. 너무 싸게 인수하면 현대그룹 구조조정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원망의 목소리가 나오고 시장가보다 턱없이 높은 값에 사들이면 비싸게 인수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IB(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는 “이번 매각에서 산은은 인수자이자 매각자라는 지위를 갖고 있다”며 “지분을 싸게 사는 것이 시장에 되팔 때 유리하겠지만 실사를 거쳐 기준가격이 나오면 일단 현대그룹과 산은이 가격을 조율할 것”이라고 말했다.
◇ 현대증권 새 주인 누가 될까…현대차그룹 계열 물망
현대증권 매각가격과 함께 현대증권의 새 주인이 누가 될 것인가에도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특히 현대자동차그룹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현대증권은 현대건설처럼 ‘모태’ 기업이라는 상징성 측면에선 상대적으로 의미가 크지 않지만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선친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벌여놓은 사업이라는 의미가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08년 신흥증권을 인수해 사명에 ‘현대’(현대IB증권→현대차IB증권)를 넣었다가 현대그룹의 반대에 부딪혀 포기한 적이 있다. ‘현대’라는 명칭이 갖는 상징성을 고려할 때 현대차그룹이 현대증권을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산업은행이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PEF를 구성할 때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투자자로 참여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IB업계 고위 관계자는 “현대건설 등 현대차그룹 계열이 PEF의 재무적 투자자 등으로 참여했다가 나중에 현대증권을 인수해가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의 한 연구원도 “현재 현대차그룹 쪽에서 인수와 관련한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지 않지만 매각 작업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결국 관심을 보일 것”이라며 “현대증권이 IB업무 인가를 받은 증권사라는 점도 현대차그룹에서는 매력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