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무례한’ 정부당국자들 귀하/김상연 정치부 차장

[오늘의 눈]‘무례한’ 정부당국자들 귀하/김상연 정치부 차장

입력 2010-01-07 00:00
수정 2010-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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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실 같은 정부부처 당국자들을 취재하면서 느끼는 건데, 다른 취재원들과 좀 다른 면이 있다.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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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기자 처음 뵙겠습니다. 서울신문 출입기자입니다.

당국자 반갑습니다. 내가 그 회사 홍길동 부장이랑 친한데…,길동이는 잘 있죠?

세상에, 길동이라니…. 이런 무례(無禮)도 입에서 나오면 저절로 말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심리는 자명하다. 자신이 기자의 상급자와 막역한 사이니까 기사를 쓸 때 잘 알아서 살피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저열한 공격을 당하는 순간 기자는 공포에 떠는 게 아니라, 모욕감에 전율한다. 심장박동 수가 현저히 증가하면서 혈압이 급상승하고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된다. 왜냐고? 당국자가 기자의 상급자를 막 호칭한다는 것은 그 하급자인 기자를 자신의 아래로 규정하려는 무의식의 발로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해가 안 간다면 역(逆)으로 생각해 보면 된다. 기자가 어떤 당국자한테 그의 상급자(차관급이라고 하자)를 들먹이면서 “홍길동 차관 잘 아는데, 길동이 잘 있나요?”라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길동이라고 부르기’ 전략은 결과적으로 100% 실패한다. 객관성을 직업의 절대 덕목으로 삼아야 하는 기자도 인간인지라 이런 악덕에 봉착하면 그의 하위(下位)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오기로 무장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자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홍길동 부장님 잘 계신가요? 내가 사실 홍 부장님이랑 동창인데….” 상대 화자(話者)를 배려해 친구한테도 존칭을 붙이는 사람을 보면, ‘아, 참 인품이 훌륭한 분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심장박동이 안정되고 혈관이 온순해지면서 세상이 찬란하게 보인다.

더 훌륭한 사람도 있다. 상급자와 아는 사이라는 점을 아예 밝히지 않는 타입이다. 나중에 그 사실을 다른 경로로 전해 들으면, 기자는 그 당국자에 대해 존경을 넘어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홍길동을 길동이라 부르면 안 된다.

carlos@seoul.co.kr
2010-01-0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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