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 유행이 되어버린 ‘아이티’ /아르촘 산지예프 러시아 로시스카야 가제타 서울특파원

[글로벌 시대] 유행이 되어버린 ‘아이티’ /아르촘 산지예프 러시아 로시스카야 가제타 서울특파원

입력 2010-03-15 00:00
수정 2010-03-15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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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촘 산지예프 러시아 로시스카야 가제타 서울특파원
아르촘 산지예프 러시아 로시스카야 가제타 서울특파원
몇 주 전 아이티에서 발생한 끔찍한 뉴스가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강진으로 인해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가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다른 도시들 역시 지진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30만명이 사망했고, 수백만명이 집과 생계수단을 잃어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조차 없어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이 지진은 지난 500년간 일어난 일 중 가장 끔찍한 비극이다. 최근 사례로는 2004년 12월26일 인도양 쓰나미로 23만명이 희생됐다.

지진은 인명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역사적 가치가 있는 수많은 유물도 파괴했다. 아이티 문화는 세계 여러 민족의 수십 가지 풍습과 전통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아이티의 대표적인 문화인 크리올 문화는 프랑스와 아프리카의 영향을 받았다.

전세계 예술가들이 높이 평가하는 아이티의 예술도 극심한 타격을 받았다. 자연재해로 인해 포르토프랭스의 아름다운 사원들과 거리의 독특한 벽화들이 사라졌으며, 아이티 회화의 걸작들도 대량 소실되었다. 수천 점의 그림 중 단지 수십 점만 보존되었을 뿐이다.

서인도 제도에 위치한 이 가난한 나라 아이티의 비극을 공감한 많은 나라가 구조대를 파견했고 인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전세계 언론은 연일 재난 현장 상황을 보도했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속한 대응도 놀랍지만, 일부 국가들이 이 비극을 자국의 ‘넓은 아량’을 선전하는 데 이용하려 했다는 점은 더욱 놀랍다. 심지어 이 나라들이 타국의 구호활동조차 방해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지금도 구호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넘쳐난다.

모든 뉴스는 새로운 것일 때만 가치가 있는 법이다. 언론은 독자들에게 식상한 뉴스를 금방 알아채고, 그 주제를 바로 바꾸어 버린다. 아이티 참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구조활동과 피해 집계가 마무리되면서 언론의 떠들썩한 보도도 잠잠해졌다. 국가 인프라 재건 및 국민생활 정상화라는 일반적인 과정이 시작되면서 아이티에 관한 뉴스들도 굵직한 다른 뉴스들에 가려져 버렸다.

쇼는 끝났다. 그러나 폐허는 그대로 남아 있다. 수만명이 집과 먹을 것이 없어 고통 받는 상황도 그대로이다. 물론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아이티 지원 사업을 지속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얼마 전 유엔은 아이티 복구에 거의 15억달러라는 기록적인 자금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폐허가 된 아이티 복구와 이재민 구호를 위한 평화봉사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곧 우기가 시작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거처를 잃은 아이티 국민들이 빗속에서 더 큰 고통을 받게 될 것이므로, 그 이전에 이루어질 지원이라는 점에서 시의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티가 국제원조가 필요한 세계 유일의 국가는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구상에는 자연재해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참담한 삶을 이어나가는 수십 개 국가가 있다. 지진 발생 이전에 아이티의 수많은 주택이 인명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한 사람은 거의 없었으며, 주택의 내진성에 대해서도 언급한 사람이 없었다. 저 가난한 나라에는 실업·빈곤·범죄가 만연했으며, 유엔 평화군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종종 그렇듯이, 비극이 발생한 후에야 비로소 가난한 나라 아이티의 존재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많은 저명 인사들이 성금 모금을 위한 자선의 밤 행사를 열었고, 일부는 아이티 국민 돕기 성금 모금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레스토랑과 카페에서도 집을 잃은 아이티 주민들을 위한 성금을 모은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모금함을 설치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인터넷을 통해서 모금을 하는 것이 큰 규모에 달했다. 그러나 미국 경찰은 주민들에게 기부를 할 때 조심하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많은 사기꾼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이티’라는 단어 자체가 마치 유행이 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2010-03-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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