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병역기피 논쟁/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병역기피 논쟁/최광숙 논설위원

입력 2010-07-14 00:00
수정 2010-07-14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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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의 양덕, 성천의 매 잡는 사람은 40호만 두게 하고, 그들에게는 병조에서 차첩(임명장)을 주게 했다. 첩이 없이 행세하는 자는 그 고을 관청에 군인으로 편입시키니 이 때문에 혁파된 시파지(매를 기르는 사람)가 수백호나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의 한 대목이다. 당시 매 사냥에 나선 임금의 수레 뒤를 따르며 보필했던 이들에게는 부역을 면제해 줬다. 자연 군역을 피하려는 이들이 청탁도 넣고 허위로 매 사냥 자격증도 위조해 사회문제가 됐나 보다. 조선시대에는 심지어 군역을 피하기 위해 승려가 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병역기피 논쟁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시기는 1997년 대선 때가 아닌가 싶다.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아들 정연씨의 병역 사유가 논란이 됐다. 키 179㎝의 정연씨가 45㎏의 체중미달로 병역면제를 받은 것이 여론의 집중 포화를 받은 것. 아들은 소록도의 봉사활동으로 참회했으나 그 아버지는 결국 낙마하고 말았다. 그 이후 공직사회에서는 ‘한 자리’ 하려는 아버지의 출세길을 막지 않으려는 공직자들의 아들들이 줄줄이 군입대를 자원하는 풍토가 생겨났다.

대통령은 군통수권자이다 보니 어느 나라에서나 대선후보의 병역문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영국 옥스퍼드대로 유학가면서 병역의무가 면제됐다. 베트남전을 피하기 위한 병역기피가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대선전에서 한때 병역 논란에 시달렸다. 한 시민단체가 주 공군 방위군에서 복무했다는 부시의 병역기록을 증명해주는 이에게 5만달러를 주겠다며 의문을 제기하면서다.

전당대회를 앞둔 한나라당에서 병역문제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당 대표경선에 나선 안상수 후보의 군 면제 사유는 ‘고령’. 홍준표 후보가 이를 문제삼고 나섰다. 20세 때 징병검사 기피로 시작된 병역문제는 입영연기, 기피, 입영후 귀가, 보충역으로 이어지다 32세에 병역에서 해방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에 안 후보는 “고시 공부하러 산에 가면서 통지서를 받지 못한 것이지 범법으로 입대를 기피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날 선 병역기피 논란에 안 후보가 ‘좌파 주지’로 지목했던 명진 봉은사 주지 스님이 “병역기피는 할 수 있어도 진실을 기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거들고 나섰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거론하며 병역의 의무를 강조하는 것보다 ‘진실’을 감출 수 없다는 말이 더 무섭게 들린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2010-07-1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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