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과 후한을 통틀어 장구한 세월 동안 사용된 돈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오수전(五銖錢)이다. 동그란 엽전에 사각형 구멍이 나 있고, 구멍의 오른쪽에는 ‘五’자, 왼쪽에는 ‘銖’자가 양각되어 있다. 오수전은 내륙과 도서의 동남아시아, 서역과 터키를 거쳐 로마의 경역 및 인도 고대 유적에서도 발견된다.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도 발굴되었다. 오수전은 기원 전후 강력한 힘을 자랑하였던 한제국의 국제무역용 결제화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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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수 서울대 인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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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수 서울대 인류학 교수
오늘날로 말하자면, 미국 달러와 같은 위력을 가진 셈이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 자리를 굳힌 중국은 한제국을 모델로 하여 2000년 만에 세계 최강의 국가건설을 목표로 매진하고 있다. 미국의 견제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중국대륙은 우리의 미래에 어떤 입장을 요구하는가? 지금은 중국인들이 한국으로 밀항도 하고, 조선족이 한국에서 직업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주머니를 바꾸어 차는 날이 올 것이 예견된다. 중국의 식당에서 설거지하고 ‘농민공’ 대신 공사판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줄을 서는 때가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400~500년 전 베이징(北京)의 동쪽 관문인 조양문(朝陽門) 밖에서 성 안의 동태를 기웃거리던 조선인 사신들의 또 다른 행색이 21세기 베이징 거리에 어른거리는 모습을 애써 외면할 수는 없다.
거목은 그늘이 넓다. 북한은 ‘책봉’을 빌미로 이미 그늘 밑으로 자진해서 들어간 것 같다. 이 세상에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일곱 군데다. 중국은 특별행정구역인 마카오를 앞세워 포르투갈어 사용권을 하나의 경제협력공동체로 묶어내는 회의를 개최한다. 요코하마의 아시아·태평양 회의에서 후진타오는 일련의 미팅을 했다. 또 다른 특별행정구역인 홍콩의 수장을 불러서 악수한 후 주석은 손바닥의 온기가 채 식기도 전에 타이완의 국민당 최고 고문을 파트너로 불러서 환담을 했다. 소위 ‘양안관계’의 밀착이 특별행정구역의 수준까지 이르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위였다.
미국도 참여한 아·태 회의가 모두 환율에 몰입하고 있을 때, 중국은 타이완의 정치적 지위를 가늠하는 포석을 한 것이다.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열도) 사건으로 ‘힘’을 과시하였던 중국이 난사(南沙)·시사(西沙)군도에 관한 정치적 지위를 확고히 하는 언행을 쏟아내는 동시에 아세안과의 지정학적 공존을 강조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과 상하이 엑스포의 열기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으로 이어지고, 광서장족자치구의 난닝에는 아예 아세안 타운을 만들었다. 그 속에 일본과 한국의 영사관도 들어가도록 계획된 현장을 보았다.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의 고고문물연구소는 동남아고고학연구소를 병행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윈난대학 민족연구원은 동남아시아 제국과의 학술교류를 강화하는 프로젝트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쿤밍시내 남부의 ‘로스완’ 상무성(商務城)은 동남아 상인들로 붐비고, 중국상품을 실은 라오스행 대형 트럭들은 꼬리를 물고 달린다. 인민해방군이 카자흐스탄 육군과 합동훈련하는 모습과 인민해방군 공군기가 카자흐스탄 기지에서 발진하는 모습이 CCTV로 반복해서 방영된다. 중국의 의료진들이 파키스탄의 전쟁피해 지역과 홍수피해 지역의 복구를 위해서 땀 흘리는 장면이 겹쳐지고 있다.
거목이 쓰러지면 주변에 피해가 크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생존전략은 일방적으로만 적용해도 곤란하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힘의 진공상태가 나타나는 순간을 능동적으로 낚아채지 않으면, 부딪치는 고래들 사이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등 터지는 새우가 된다. 새우가 살아가는 방법을 재삼 새겨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한 세기 전에 국치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또다시 유사한 구렁텅이로 후손들을 몰아넣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공생과 화해의 언급이 입장마다 달라지는 것은 먹고 먹히는 국제정치의 기본이다. ‘팍스 시니카’를 향한 숨가쁜 국제정세가 돌아가고 있다.
2010-11-2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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