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공자의 굴욕/박홍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공자의 굴욕/박홍기 논설위원

입력 2011-04-25 00:00
수정 2011-04-25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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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 동상이 지난 1월 11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세워진 일은 대사건이었다. 공자의 노년기를 형상화한 동상 높이는 무려 9.5m에 이르렀다. 1.6m 높이의 석조 기단를 빼면 7.9m에 달하는 거대한 동상이었다. 청동 무게만 17t에 달했다. 근엄한 표정의 공자는 두 손을 모은 채 허리 왼쪽엔 칼을 찼다. 기단부에는 ‘공자’(기원전 551~기원전 479)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공자상은 베이징 중심부를 동서로 관통하는 창안제(長安街)를 사이에 두고 마오쩌둥(毛澤東) 전 국가주석의 초상화와 마주 보는 위치에 자리잡았다. ‘공자의 부활’로 받아들여졌다. 국가 공간으로 상징되는 톈안먼 광장과 국부인 마오쩌둥과의 관계 때문이다. 톈안먼 상단에는 높이 6m, 폭 4.6m의 마오쩌둥 초상화가 걸려 있다. 마오쩌둥은 1966년 문화대혁명 당시 유교사상을 봉건주의 산물로 낙인 찍어 공산주의를 타락시킨 반동분자로 공자를 철저하게 배척했다. 정적인 린뱌오(林彪)를 제거하는 수단으로 공자를 끌어들이기도 했다. ‘비림비공’(批林批孔)이 그것이다. 홍위병들은 공자 고향인 취푸(曲阜)에 있는 공자묘를 파괴하고 동상을 부숴 버렸다.

공자는 1980년대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되살아났다. 개혁개방과도 맞물렸다. 심화되는 빈부격차와 갈등을 치유하는 데 마르크스주의나 마오쩌둥사상으로는 한계를 느낀 까닭이다. ‘조화로운 사회건설’을 위해 공자의 인(仁)과 화(和)의 정치철학이 필요했던 것이다. 중국어와 문화를 해외로 전파하는 공자학원이 96개국 322곳에 개설되고, 노벨평화상에 맞선 공자평화상이 제정됐다. 중화문명 회귀로 평가될 정도다.

그런데 지난 20일 톈안먼의 공자상이 사라졌다. 동상이 서 있던 자리는 철판으로 가려졌다. 제막된 지 불과 3개월여 만이다. 중국 언론은 “원래 있던 국가박물관 북문 바깥 마당 쪽에서 박물관 서문 안쪽에 새로 조성되는 조각 공원에 다시 세워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지금 위치는 원래 임시”였다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공자상 철거를 두고 시끄럽다. 마오쩌둥과 공자로 대변되는 좌·우파의 팽팽한 대립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애초 마오쩌둥의 초상화와 마주 보는 위치에 공자상을 세운 자체가 모순이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이유야 어떻든 공자상이 옮겨지는 만큼 마오쩌둥과의 기싸움에서 밀렸다고 볼 수 있다. 공자의 굴욕이다. 중국에서 공자의 실질적인 부활은 아직 멀었다는 느낌이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2011-04-2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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