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취사병/이춘규 논설위원

[씨줄날줄] 취사병/이춘규 논설위원

입력 2011-04-26 00:00
수정 2011-04-26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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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기 드 모파상의 단편소설 ‘두 친구’에는 취사병(炊事兵)이 나온다. 작품은 모파상 자신이 1870년 20세의 나이로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썼다. “총살된 (낚시광)두 사람의 시체가 강물 속에 가라앉자 발사명령을 내렸던 장교는 어망 속 물고기를 보고 미소지으며 취사병을 부른다. 살아 있을 때 튀겨야 맛이 좋을 거라며 태연한 얼굴로 담배를 피운다.”라며 전쟁에 대한 혐오감과 인간의 위선을 그렸다.

취사병. 병사용 음식 조리를 담당하는 사병이다. 고대 이후 전쟁이 있는 곳에는 취사병이 있었다. 역할에 비해 평가는 인색한 편이었다. 사병은 물론 부사관·장교들의 건강까지 책임지는 병과지만 애환이 적지 않다. 일반 병사들이 쉬는 휴일에도 소임인 밥을 짓느라 쉴 수가 없다. 계절에 상관없이 다른 병사들보다 1시간 이상 먼저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한다. 연합·독립 부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사격 등 기초군사훈련도 받아야 한다.

박성진은 경험담을 토대로 ‘취사병 X파일’이란 책을 출간해 취사병의 애환을 소개했다. 혹한기 훈련은 모든 병사들에게 쉽지 않다. 혹한 속에 치러야 하는 전투 대비 훈련으로 준비과정부터 훈련, 취침 등 모두가 힘들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 밥을 짓는 취사병의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나 박성진은 취사병 생활을 밝고 긍정적으로 그렸다. 끈끈한 우정과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오는 성취감 등 추억과 향수로 채색했다.

취사병의 처지와 인식은 시대 흐름에 따라 바뀌었다. 1960~70년대 배고팠던 시절 취사병은 가난한 집안 출신의 사병들에게는 최고의 보직이었다. 3년 동안이나마 마음껏 배 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어떤 부대는 유난히 굶주림에 민감한 사병을 취사병으로 배치하기도 했다. 절대빈곤이 사라지고 의식주 문제가 뒷순위로 밀리자 한동안 취사병은 기피 보직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최근 요리사 지망생이 늘면서 군복무 중 특기를 살리려는 취사병이 인기 보직으로 떠올랐다.

육군이 그제 병영식탁에 올릴 표준요리 조리법 책자를 펴냈다. 신출내기 취사병도 쉽게 따라할 수 있단다. 고된 훈련 후 피로에 입맛이 텁텁해진 병사들의 식욕을 돋워주는 소스의 비결 등이 담겨 있다. 오이지·숙주·장아찌류 등 11가지 식재료가 식단에서 사라진 대신 새로 급식 중인 굴·소갈비·낙지 등 15가지 재료를 소개해 ‘병영 식단’의 변화상도 알 수 있게 했다. 취사병의 애환이 좀 더 줄어들 것 같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2011-04-2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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