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기호 의원
고엽제는 흔히 미군이 베트남전쟁 당시 밀림에 다량 살포한 2·4·5T계와 2·4D계를 혼합한 제초제를 가리킨다. 2·4·5T는 제조 과정에서 미량의 다이옥신을 함유하고 있고, 이것이 인체에 들어가면 각종 암과 신경계 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
이번 의혹은 무엇보다도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으로 한 점 의혹이 없도록 투명하게 조사해야 하며 결과도 마땅히 공개해야 한다. 잘못 처리된 부분이 있더라도 사실 그대로 알리고, 문제점이 있다면 철저히 해결해야 하며, 오염된 곳은 완벽히 복구하고, 피해자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보상해야 한다. 다행히 미국은 과거와 달리 고엽제 의혹 조사에 대해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서 열린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환경분과위원회에서는 미국 측이 우리 쪽의 요구를 거의 다 수용했다고 한다. 월터 샤프 주한 미군사령관도 ‘적극적이고 투명한 규명’을 약속했고, 미8군사령부도 같은 달 25일 소속 대령 2명을 미국으로 파견해 전역 미군의 증언을 채록했다. 기지 외곽 지하수 관정 두 곳의 시료를 채취했으며, 조만간 기지 내부 고엽제 매몰 의심 지역에 대한 탐색도 시작된다.
다행스러운 건 국립암센터 조사 결과 칠곡군 지역주민의 발암률은 경북지역 평균과 비슷한 수준이며, 암 사망률은 경북과 비교하면 오히려 낮은 것으로 나타나는 등 아직 심각한 증상은 없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 정부와 미군 당국은 고엽제 매몰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는 만큼, 이번 사태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환경 피해만큼이나 우려되는 것은 이 문제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가 또다시 반미 대 친미의 이분법적 구도로 분열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어떤 이들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이슈화에 매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이미 캠프 캐럴 앞에서는 연일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고, 다양한 정치적 퍼포먼스도 진행되고 있다. 또 일부 단체들은 조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 SOFA 전면 재개정,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직접 사과도 요구한다. 과연 이들이 한·미 당국의 합동 조사결과에 대해 순순히 인정할지도 걱정스럽다. 전문가들이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 “근거 없다.”고 외쳐봐야 소용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난 2008년 광우병 사태와 지난해 천안함 폭침 당시 근거 없는 의혹 제기로 국력이 얼마나 소모되었는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미국의 체면을 봐서 덮고 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철저하고 투명한 진상조사를 통해 온 국민이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다만, 지나치게 과민 반응하거나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이들이 있다면 경계하는 것이 마땅하다.
2011-06-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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