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성적 부풀리기’와 ‘줄 세우기’ /이윤미 홍익대 교육학과 교수

[시론] ‘성적 부풀리기’와 ‘줄 세우기’ /이윤미 홍익대 교육학과 교수

입력 2012-01-06 00:00
수정 2012-01-06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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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미 홍익대 교육학과 교수
이윤미 홍익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2014학년도부터 고등학교 내신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등수에 의해 일률적으로 학생을 상대평가하는 대신 교육과정에 제시된 학업성취 수준의 달성도에 따라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1981년 고교내신제 시행 이래 상대평가와 절대평가가 반복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셈이다.

절대평가가 보다 교육적인 방식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절대평가는 성취 준거가 명확하고 공정성과 객관성 논란이 크지 않을 때 효과적 시행이 가능하다. 이러한 조건들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절대평가의 도입만으로 교육이 개선되기는 어렵다. 예상되는 문제들이나 정책목표 실현을 위한 후속 조치들이 충분히 제시되지 않은 채 정책이 발표되고 있어 염려된다. 왜 이 시점에서 도입되며, 당장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누구인가 하는 점도 주목된다.

교과부는 상대평가제가 학생들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가져오고 배타적 경쟁심을 조장하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본다. 학생들의 스트레스와 경쟁심이 상대평가제도 때문인가? 자사고, 특목고, 국제중 등의 확대로 초등학교부터 입시경쟁이 시작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교육을 왜곡하는 경쟁구조를 정책적으로 심화시키면서 상대평가제도의 결함만을 언급하는 것은 침소봉대이다. 학생들의 고통에 대한 근본적 성찰은 생략되어 있다는 인상이다.

선발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교육’보다 ‘변별’이 중시되어 왔다. 무엇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보다는 누가 더 나은가를 가려내는 것이 평가의 목적이 되어 왔다. 경쟁으로 인해 절대평가로는 성적을 부풀렸고 상대평가로는 맹목적으로 줄세우기를 했다. 상대평가에서는 정해진 비율에 맞춰 누군가는 최하등급에 배치되어야 하기 때문에 우수학생들이 집중되어 있는 학교들에서는 문제가 심각하다. 최근 몇 년간 특목고와 자사고 입학경쟁률이 낮아진 데는 상대평가로 인한 내신 불이익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지난 수년간 ‘2부 리그’로 전락한 일반학교들에서 그나마 상위권 학생들의 버팀목이 되어준 것이 상대평가제도였다는 역설을 생각할 필요도 있다.

절대평가는 결국 서열구조 안에서 이미 ‘기득권자’인 자사고, 특목고 학생들을 유리하게한다. 이 때문에 절대평가 도입이 현 정부가 집요하게 추진해온 자사고 정책의 완성을 위한 것이라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당장의 문제는 그렇다 치고 현재의 절대평가제도가 장기적으로나마 학교교육을 정상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절대평가를 하려면 교육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나 규준이 체계적으로 설정되어야 하고, 평가자인 교사와 학교에 대한 교육적 신뢰가 확고해야 한다. 절대평가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된 국가들에서는 교사의 수업자율성과 평가권이 존중되고 있다. 절대평가는 체계적 준비와 인식의 공유 없이 성공하기 어렵다. 치밀하게 준비되지 못한 절대평가가 객관성이나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지 않고 교육적 명분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절대평가의 교육적 장점은 배워야 할 것들을 제대로 배웠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상대적 지위만을 보여주는 상대평가와는 크게 다르다. 제대로 된 절대평가를 하려면 교사들의 종합적이고 면밀한 피드백이 요구된다. 평가에 대한 철학이 없는 상태에서는 변화에 대한 착시(錯視)만 일으킬 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어떤 정책이나 제도가 지닌 교육적 특성이나 장점을 부각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중요한 가치들이 실현될 수 있어야 좋은 제도가 된다. 현재 논의되는 절대평가방식은 사회적 형평성이나 교육의 공공성이라는 가치와 부딪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변별 위주의 왜곡된 교육과 심화된 학교 서열구조에 대한 근본적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제 없이 평가방식만을 바꾸어서는 성적 부풀리기와 줄 세우기의 지루한 반복을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다.

2012-01-0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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