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사랑의 정표/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사랑의 정표/최광숙 논설위원

입력 2012-12-15 00:00
수정 2012-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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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아름답기도 했지만 책 욕심도 많았다. 당대 최고 도서관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전쟁 중에 불타자 도서관을 불태운 카이사르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상심에 찬 클레오파트라를 위해 안토니우스는 ‘사랑의 정표’로 시리아 지역 페르가몬 도서관의 장서 20만권을 보냈고, 결국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원나라에 머물던 고려 충선왕이 환국을 하게 되면서 흠모하던 여인에게 건넨 사랑의 정표는 연꽃 한 송이다. 단양군수 시절 애인 두향이 갖가지 선물을 줬지만 마다했던 조선시대 유학자 이퇴계가 유일하게 받았던 사랑의 선물도 매화 한 그루다. 정약용의 부인 홍씨가 유배 가 있던 남편이 그리워 보낸 사랑의 정표는 시집 올 때 입고 온 다홍치마다. 이에 남편은 아내의 낡은 치마폭을 잘라 두 아들에게 당부의 글을 쓰고, 시집 가는 딸에게는 매화와 새 그림을 그려 행복을 빌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는 이렇듯 은은하고도 정겨운 사랑의 정표들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사랑이 너무 깊어서인지 생각지도 못할 엄청난 사랑의 정표들도 있다. 인도의 대표적인 건축물 타지마할은 인류 역사상 가장 사치스러운 사랑의 정표가 아닐까 싶다. 죽은 아내를 못 잊은 인도의 황제가 22년 동안이나 지었다는 무덤이 바로 타지마할 아니던가.

최남선의 기록을 보면 일제시대 장안의 잘나가는 기생들은 정을 통했던 한량들이 사랑의 정표로 뽑아준 이빨들을 모았다는 엽기적인 내용이 있다. ‘배비장전’에도 기생 애랑이 떠나는 님에게 “웃으실 때 보이는 앞니 하나 빼주면 고운 수건에 싸서 늘 젖가슴에 품고 살겠다.”고 교태를 부리는 장면이 나온다.

내연의 관계인 변호사에게 벤츠 승용차 등을 받고 사건을 다른 검사에게 청탁한 혐의의 ‘벤츠 여검사’가 무죄를 선고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 재판부는 “사건 청탁 이전에 벤츠 승용차를 받았기에 청탁 대가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당사자의 “벤츠 등은 연인이던 최 변호사가 사랑의 정표로 제공한 것”이라고 주장한 내용을 받아들인 것이다.

조목조목 법리를 따져 들어가면 그런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법 중에 가장 상위법이라는 ‘국민정서법’과는 동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변호사가 여검사에게 준 선물 리스트를 보면 수천만원대의 반지와 시계, 모피 코트 등 서민들은 엄두도 못낼 고가의 제품들로 꽉 차 있다. 그 변호사가 애인이 검사가 아니어도 그런 선물을 안겼을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2012-12-1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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