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병철 정치부 기자
이 재판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살인에 대한 평가가 계속 뒤바뀌기 때문이다. 차례로 저세상으로 오는 새로운 증인들은 데모스테스의 살인을 저마다 다르게 평가한다. 결국 그는 까뚜리왕국이 5000년 역사 속에서 24번 역적집단으로 몰리고 19번 위대한 왕국이라고 규정되는 동안 반동과 애국자라는 양극단의 평가를 번갈아 받는다.
4·19혁명과 5·16쿠데타가 차례로 일어난 때를 즈음해 이런 비정상적인 극중 상황을 그려낸 작가의 주제의식이 뭔지는 비교적 분명하다. 그건 자고 나면 애국과 반동이 뒤바뀌는 현실에 우리가 과연 정의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느냐는 회의감이었을 것이다. 당시 무수한 데모스테스들은 반동으로 몰려 이 나라에서 사라졌지만 기나긴 역사의 호흡에서 볼 때 그건 무구한 진실성을 담보하기는 힘든 판결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선고를 바라보며 50년 전 이 작품을 떠올린 건 2014년 헌재가 일종의 데모스테스의 재판을 너무 서둘러 끝낸 게 아닐까 하는 찝찝함 때문이다. 물론 작품 속 재판정처럼 헌재가 무한정 선고를 미룰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른바 통합진보당 ‘주도세력’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1·2심 판단이 엇갈린 상황에서 헌재는 왜 고작 다음 달인 대법원의 판단조차 기다릴 수 없었을까. 더욱이 정치적 논란이 분명히 예상되는 때에 헌재는 오히려 논란을 더 증폭시키고 스스로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식으로 재판을 마무리했다.
‘데모스테스의 재판’이 발표됐던 시대에 벌어진 상당수 정치적 재판은 최근에 와서 그 결과가 뒤집히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2014년 헌재의 선고가 다시 그 같은 길을 가리라고는 당연히 믿지 않는다. 대신 선고와 별개로 해산된 통합진보당과 해산을 선고한 헌재 그리고 해산을 청구한 현 정권에 대한 평가는 분명 언젠가 바뀔 것이다. 앞으로 몇 번이나 까뚜리왕국과 뚜방뚜왕국이 뒤바뀔지는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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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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