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연주 한국청년유권자연맹 운영위원장
지방자치에 중앙정치를 끌어들여 단순한 정책투표가 보수와 진보의 이념투표로 변질한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나쁜 투표’와 ‘나쁜 정책’의 혼란만 남긴 채 전 국민을 선거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무상급식 찬반 투표와 서울시장직 사퇴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투표행위 자체가 공개적으로 정치성향을 드러내는 매우 ‘이상한 선거’를 치러야 했건만, 선관위를 비롯한 어느 기관에서도 왜 이런 이상한 선거를 치러야 하는지, 앞으로도 이런 이상한 선거가 계속될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저 10월 26일에 서울시민은 공석인 서울시장을 다시 선출해야 한다는 공지만 있을 뿐이다. 이어서 터진 서울시 교육감 부정의혹 수사는 또 다른 선거를 예고하는 듯하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후보가 누구인지 다 알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의 광역·기초단체장, 지방의원, 교육감, 교육위원 선거를 치른 후 올 4월 또다시 재·보궐선거를 치르느라 해당 지역주민도 아닌 전 국민이 홍역을 치러야 했다. 선거 결과 참패한 한나라당의 지도부 선출로 당원도 아닌 일반 국민은 정당 내 선거과정을 또다시 지켜봐야 했다. 내년은 총선과 대선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번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선거 태풍 속으로 정국이 빨려들어 가게 될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모든 일상이 정지되고 안철수 원장의 움직임과 그것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쏠려 있는 듯하다. 어느 날 갑자기 터져 나온 무소속 후보 신드롬은 사실은 ‘갑자기’가 아니다.
지난해 선거에서 나타난 젊은 세대의 투표바람과 함께 이미 예고되었던 것이다. 시대와 가치가 변하고 있는데도 우리 정치권은 여전히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논쟁에 파묻혀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구시대적인 정치행태만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의 기대와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단지 정치공학적인 생각에 가득 찬 정치인들을 보면서 유권자들은 이미 마음속으로 정당을 부정하고 정치를 부정하고 있었던 거다.
기존 정치권에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불신감은 진보와 보수가 아닌 탈이념의 정치와 기성 정당구도와 다른 제3의 세력이나 시민사회세력 등의 새로운 대안 정치를 기대하게 한다. 여기에 참신한 인물을 바라는 유권자의 갈망이 더해지면서 무소속의 비정치적인 인물에 대한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다. 혜성처럼 등장한 정치 신인을 상대할 마땅한 후보군을 갖지 못하고 외부영입을 해야 한다며 우왕좌왕하는 양대 정당의 소동을 보면서 언제쯤 우리는 예측가능한 정치를 볼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대의민주주의의 위기가 맞다.
수년 전부터 시작된 ‘바람’과 ‘이미지’가 곧 표로 연결되는 정치 풍토는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정치 발전을 위해서는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사람 중심이다. 사람만 바꾸면 된다는 인식은 새로운 정치 세력과 영웅의 출현을 갈망하게 한다. 지금 우리는 어쩌면 그런 영웅을 기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다수를 차지하는 정치적 무관심층과 부동층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움직이면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정치도 고도의 독자적인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이란 것과 신념과 가치가 분명한 인물인가라는 검증과정이 필수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유권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피곤한 일이다.
2011-09-0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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