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빛 발견] 남의 아내를 높이는 말 ‘영부인’/이경우 어문팀장

[말빛 발견] 남의 아내를 높이는 말 ‘영부인’/이경우 어문팀장

이경우 기자
입력 2017-04-26 18:04
수정 2017-04-26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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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令夫人)은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국어사전에는 이렇게 풀이돼 있다. 사전의 뜻풀이만 놓고 보면 ‘부인’(夫人)과 의미가 다르지 않다. 현실에서도 그렇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실제 쓰임은 사전과 많이 다르다. 주로 ‘대통령의 부인’을 가리키는 말로 쓴다. 언론 매체에서 이런 뜻으로 이따금씩 사용한다. 권위주의 시절의 기억 혹은 습관 때문이다.

한때 대통령 부인을 가리킬 때 ‘대통령 영부인’이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대통령 부인’으로는 좀 부족해 보였는지는 모르겠다. 줄여서 ‘영부인’이라고도 불렀다. 오랫동안 그렇게 부르다 보니 ‘영부인’이 곧 ‘대통령 부인’을 뜻하는 말인 것처럼 혼란을 가져왔다. 영어 ‘퍼스트레이디’는 ‘영부인’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대통령의 아들과 딸들은 ‘영식’(令息), ‘영애’(令愛)로 불렸다. ‘영식’은 ‘윗사람의 아들’을, ‘영애’는 ‘윗사람의 딸’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어렵고 권위적으로 비치는 이 말들은 시대가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수그러들었다. 역사와 추억 속의 단어가 됐다. ‘영부인’도 마찬가지로 사라지는 듯하더니 다시 나타난다.

일부에서는 ‘대통령’(大統領)의 ‘령’에 ‘부인’을 붙여 이뤄진 말로 오해하기도 한다. 아니면 ‘대통령 부인’을 가리키는 말이 본래 ‘영부인’인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대통령 부인을 지칭하는 말이 특별히 있어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없다고 불편해질 일이 없다. ‘영부인’은 이전 시대의 언어다. 거기에는 권위가 있고 낡은 사고가 있다.

이경우 어문팀장 wlee@seoul.co.kr
2017-04-2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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