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고궁박물관, 국가대표급 박물관이 되려면/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금요칼럼] 고궁박물관, 국가대표급 박물관이 되려면/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입력 2019-08-29 17:36
수정 2019-08-30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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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충남 예산의 가야산에는 오페르트의 도굴사건으로 잘 알려진 남연군의 무덤이 있다. 흥선대원군이 경기 연천에 있던 아버지, 곧 훗날 고종의 할아버지가 되는 남연군의 무덤을 1844년(헌종 10년) 백제사찰 가야사 터로 옮긴 것이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보덕사가 있다. 비구니 수도 도량답게 깔끔한 보덕사에서 인상적인 것은 극락전 앞 대방(大房)의 존재다. ‘원스톱 불공’이 가능하도록 수행 공간과 생활공간 등 다양한 쓰임새를 부여한 전각이 대방이다. 보덕사는 흥선대원군이 남연군 무덤의 수호사찰로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대방을 두고 흔히 조선 후기 유행한 염불 수행을 위한 복합 법당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서울 돈암동 흥천사와 경기도의 고양 흥국사와 남양주 흥국사 등 왕실 원찰에 대방이 집중적으로 보이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염불수행은 염불수행이지만 한마디로 극락왕생과 현세발복을 비는 왕실 여인들의 기도공간이었다. 파주 보광사 만세루나 화성 용주사의 쌍둥이 전각 나유타료와 만수리실도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이 다루어야 영역은 어디까지일까를 생각하다 뜬금없이 보덕사와 대방의 존재를 떠올리게 됐다. 경복궁 내부에 자리잡은 고궁박물관은 최근 주목받는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 열리는 ‘문예군주를 꿈꾼 효명’ 특별전은 2007년 개관 이후 가장 성공적으로 젊은 세대의 눈길을 사로잡는 기획이 아닐까 싶다. 효명세자는 2016년 방영된 TV드라마에서 배우 박보검이 연기해 널리 알려졌다.

지난해 특별전 ‘조선왕실 아기씨의 탄생’ 역시 조선왕실의 안태(安胎) 문화를 집중적으로 다루어 호평을 받았다. 지난 3·1절에는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이라는 작은 전시를 가졌다. 오는 10월에는 ‘18세기 화장문화’를 주제로 흥미로운 국제학술대회도 연다고 한다.

그럴수록 너무 권력의 한복판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도 하게 된다. 고종시대 왕실사무를 담당한 궁내부에는 일반적인 행정기관 말고도 음악을 다루는 장악원, 의약을 맡아보는 내의원, 음식을 담당하는 사옹원, 의복과 일용품 등 공급하는 상의원, 마필과 목장을 관리하는 태복시, 이전에는 내명부라고 불린 명부사, 내시와 관련된 일을 맡은 내시사, 전각을 관리하는 전각사 등이 있었다. 생활 및 의례를 담당하는 모든 기능이 있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고궁박물관의 탐구 대상은 아직 왕과 왕비의 공간에 머물고 있다.

그러니 대방만 해도 불교적 해석만 있을 뿐이다. 불암산과 북한산, 관악산 자락 등에 남아 있는 궁녀들의 무덤인 마애부도 역시 다르지 않다. 서울 창동과 월계동에 걸쳐 있는 초안산의 내시 무덤군(群)도 조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있다. 왕실용 그릇을 굽던 경기도 광주의 사옹원 가마터 수백 곳 역시 왕실 문화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팔당호 수변 분원은 사옹원 분원이라는 기관 이름이 그대로 땅이름이 된 것 아닌가. 분원은 또 기관 운영을 위해 한강을 지나는 모든 뗏목에서 세금을 징수했으니, 도성 장작값 인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렇듯 고궁박물관이 복원해야 할 삶의 모습은 왕과 왕비에 그치지 않고 상궁과 내시는 물론 도공과 마부에 이르기까지 끝이 없다. 같은 경복궁 경내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은 이전 계획으로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고궁박물관도 언젠가 좁은 궁궐 내부에서 벗어나 넓은 바깥으로 나서야 한다.

그날을 위해서라도 고궁박물관이 작은 특수 박물관으로 역할을 가두지 말고 왕실 문화, 나아가 왕조 문화 전반을 다루는 국가대표급 박물관이 되겠다는 각오를 다지면 좋겠다. 그렇게 다른 국립박물관들과 경쟁할 때 우리 박물관 문화도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2019-08-3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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