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한반도 데탕트는 ‘불가역적인 미래‘다/안동환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한반도 데탕트는 ‘불가역적인 미래‘다/안동환 국제부 차장

안동환 기자
안동환 기자
입력 2018-10-01 23:30
수정 2018-10-02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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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진두지휘하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체감하는 공포의 실체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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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환 국제부 차장
안동환 국제부 차장
미국은 지난달 24일부터 2000억 달러(약 224조원) 규모의 중국의 대미 수출품에 10%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기존 관세폭탄을 합치면 모두 2500억 달러로 중국 대미 수출 총액 5055억 달러의 절반에 육박한다. 1100억 달러로 맞보복 중인 중국은 남은 실탄이 없다. 중국이 미국의 핵심 수출품인 대두와 자동차에 25% 보복관세를 가하지만 막대한 보조금을 쏟는 트럼프 정부에 열세다.

중국이 느끼고 있는 당혹감과 분노, 패닉은 비핵화 협상이 파국을 맞게 되면 김 위원장이 맞닥트릴 예시(豫示)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외교협회에서 공개한 “속임수를 쓰거나 시간 끌기를 해 얻는 건 미국의 강력한 보복뿐”이라는 김 위원장의 이례적 발언에서도 감지된다.

연일 폭언과 비난, 보복 강도를 높여 가는 총력전 양상의 미·중 무역전쟁은 ‘치킨게임’이다. 치킨게임에서는 충동을 통제하지 않고 잃을 게 하나도 없어 보이는 쪽이 이길 가능성이 크다. ‘무식하게 용감하다’는 허세가 아니라 그 자체가 전략이다.

“어떤 사내가 문을 두드려 ‘10달러를 주지 않으면 칼로 자해하겠다’고 위협한다. 그때 눈에 핏발이 서 있다면 그는 10달러를 받아 내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위협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거나 너무 허약해 보인다면 쓸모가 없다.”(토머스 셸링의 ‘갈등의 전략’ 중)

협상력이나 협상기술이란 용어가 풍기는 상식은 상대보다 지적이고 노련한 설득력을 가진 사람이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소귀에 경 읽기’ 식의 고집이나 무모함, 극단적인 위협 등 비합리성이 협상의 메커니즘이 될 때가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2005년 게임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토머스 셸링의 ‘비합리성의 합리성’을 옹호하는 충직한 실행자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백악관에 막 입성한 트럼프에게 갈등에 물러서지 말라고 조언했다.

트럼프 외교의 키워드는 이성이 아닌 ‘분노’다. 매일 아침마다 잠에서 깬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스마트폰 자판을 두드리며 트위터에 울분을 쏟아낸다. 정통에서 벗어난 이단의 대통령이 벌이는 기행 같은 액션들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그로 인해 게임 규칙들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핵 군축 전문가인 셸링은 참여자 모두에게 득이 되는 협상 상태를 공통의 기대치가 수렴되는 지점인 ‘포컬포인트’(Focal-Point)로 표현한다. 핵심은 커뮤니케이션이다. 돌연 분노를 표출하며 협상장을 박차고 나갈 수 있는 두 ‘스트롱맨’(트럼프와 김정은)의 소통을 업그레이드해 온 문 대통령은 게임이론의 ‘이기는 한 수’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린다는 옛말대로다.

북·미 협상 와중에 남북 간 데탕트(긴장완화) 시대의 전환은 남북관계와 한·미동맹은 병립할 수 없다는 이분법을 극복한 반전이다. 북한정권 붕괴와 통일대박이라는 빈곤한 상상력으로 북핵 국면을 허송세월한 게 지난 10년이었다.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신고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지만 협상은 변화무쌍하다. 북한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로 방향을 틀었다. 남북은 1일 평양공동선언의 첫 군사적 이행 조치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과 철원 비무장지대(DMZ) 지뢰 제거를 시작했다.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은 ‘핵 없는 한반도’라는 불가역적 미래를 만들어 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ipsofacto@seoul.co.kr
2018-10-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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