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의 아침을
눈은 내리네
저 눈은 너무 희고
저 눈의 소리 또한 그윽하므로
내 이마를 숙이고 빌까 하노라
임이여 설운 빛이
그대의 입술을 물들이나니
그대 또한 저 눈을 사랑하는가
눈은 내리어
우리 함께 빌 때러라
용아 박용철은 35세에 결핵으로 요절했습니다. 출판사 시문학사를 만들어 친구들의 시집을 간행했고 시문학, 문예월간, 문학, 극예술 같은 잡지들을 간행했지요. 그러느라 광주 송정리의 오천석꾼이던 가산을 소진했습니다. 일제의 우리 문화 말살기에 용아가 없었다면 우리 문학은 얼마나 초라해졌을지요. ‘빌다’라는 우리말 신비합니다. 소원을 빌다에도 쓰이고 잘못을 빌다에도 쓰입니다. 삶이란 기원과 참회의 연속선상에 머무는 것이라는 선조들의 세계관이 반영된 것 아니겠는지요. ‘눈이 내리어/우리 함께 빌 때러라’ 읽고 또 읽습니다. 옥천 샛강에 쏟아지는 아침 햇살 속을 걸으며 나는 오늘도 빌 것이 많습니다.
2021-12-10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