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낙하산 억제, ‘사후약방문’이라도 지키길

[사설] 낙하산 억제, ‘사후약방문’이라도 지키길

입력 2014-02-21 00:00
수정 2014-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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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공공기관의 이른바 ‘낙하산’을 억제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일정 기간의 관련 업무 경력이 없으면 기관장과 감사에 선임될 수 없도록 기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어제 기획재정부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밝힌 내용이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산하에 ‘임원 자격기준소위’를 구성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보고했다. 이미 여러 공공기관에 낙하산을 내려 보낸 뒤에 나온 ‘사후약방문’이다. 그러나 잘 지켜지면 다행일 것이다. 늑장 대책이라 하더라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

정부의 낙하산 억제책을 환영하면서도 반신반의하게 된다.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공공기관 개혁을 추진하는 도중에도 기관장이나 감사, 사외이사 자리에 낙하산이 잇따라 임명됐다. 엊그제도 한국전기안전공사 신임 사장에 ‘친박계’ 인물로 이상권 전 새누리당 의원이 내정됐다. 이 전 의원은 전기안전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부장검사 출신이다. 물론 전문성이 있을 리 없다. 아무리 개혁을 외치고 낙하산을 막겠다고 해봤자 이런 풍토에서는 공염불이다.

정부의 보고를 청와대나 여당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하다.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겠지만 속으로는 마뜩잖았을지 모른다. 정치권이 공공기관의 임원 자리를 선거 전리품쯤으로 여기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대책은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청와대나 여당에 맞서서 밀어붙일 만한 힘이나 권한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뒷북 대책’이라고 할지언정 기준을 만들겠다는 시도 자체는 신선하다. 선진국처럼 5년 이상의 경력을 공공기관 임원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정한다면 전문성 없는 낙하산은 상당히 억제될 수 있다고 본다. 낙하산은 사외이사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기준을 적용받을 대상을 상임 임원으로 한정할 것은 아니다. 사외 이사 등 비상임 임원도 적용받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기준의 강제성이 문제다. 강제성 없는 권고 규정 정도로만 만든다면 눈 가리고 아옹하는 격이 될 것이다. 그런 기준은 있으나마나다. 정치권의 압력을 막아내려면 강제 규정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자면 법제화하는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 통과돼야 하므로 쉽지 않을 것이다. 개혁은 정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권의 동참이 필요하다. 이번 규정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정치권은 정부에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기 바란다.
2014-02-2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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